[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66)한글날과 우리 음악]'K-클래식' 주춧돌 놓은 윤이상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20-10-09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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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 '주체적 인식' 시도
전통 유산 연결 가곡 등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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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인 한글날에 'K-클래식'의 초창기를 반추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의도적으로 우리 말과 글, 음악을 탄압했다.

 

여기에 더해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서구의 찬송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악적 감수성을 바꿔놓았다. 우리 음악을 듣고 즐기던 감수성이 서양식 노래를 듣고 즐기는 감수성으로 바뀐 거였다.

이 시기 우리 작곡가들은 주로 노래를 만들었다. 아쉬운 점은 서양음악의 유입과 수용에 집중한 작곡가들이 고려하지 않은 '한국적 음악'이었다. 당시 우리 음악은 소위 말하는 '작가 정신'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아닌, 새 문화를 공감하고 즐겼던 음악인들의 산물이었다.

가사에 대한 정서로 인해 한국적 애환이 묻어난다는 평가도 받지만, 엄밀히 말하면 반주 붙은 서양 노래의 틀에 민요적 가락과 장단을 도입한 정도다. 즉, 도래한 서양음악에 대한 반성이나 한국의 고유 음악양식에 대한 추구 없이 만들어진 거였다.

우리 음악계에서 서양음악에 대한 반성(주체)적 인식을 도모했던 작곡가들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윤이상이다. 윤이상은 1956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가기 전 국내에서 가곡과 기악곡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1950년부터 부산사범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때 동요 70여곡을 작곡했다. 당시 초등학교 1~6학년 음악책에 수록된 동요 100여곡 중 윤이상의 작품이 70%를 차지했다고 한다. 동요 다음으로 많은 윤이상의 곡은 교가다.

해방 직후 부산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 고향인 통영의 문화협회와 통영공립고등여학교, 통영공립여자중학교 등에 재직한 윤이상은 4년 동안 시인 유치환, 김상옥과 함께 '교가 지어주기 운동'을 벌였다. 이를 통해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는 아홉 개에 이르며 학교마다 특색을 살려서 만들어졌다.

윤이상이 한국 생활기에 발표한 가곡을 비롯한 작품들은 우리 전통 음악 유산과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받는다. 함께 활동했던 안기영, 김성태, 채동선, 김순남, 이건우 등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양과 우리 음악 사이에서 균형감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이상의 균형감은 유럽 활동기에도 이어졌다.

'서양 현대음악 기법을 통한 동아시아적 이미지의 표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서양음악사에 거대한 획을 그은 작곡가 윤이상은 우리 음악의 비전을 제시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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