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예술을 배양하다·(3)현대미술가 김기라]"작품 아닌 사람이 세상 바꿔" 평화·인간애 깨우쳐준 공간

untitled1
김기라 作 'ON/NO'. 붉은 색과 파란색으로 대변되는 남과 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앞에서 보는 것과 뒤에서 보는 게 다르다. ON과 NO가 바뀐다. 긍정의 ON은 뒤집으면 NO가 된다. 2020.11.8 /작가 제공

'시대의 문제 고민 행동하는 작가' 명성
2012~2014년 장기입주·프로젝트 활동
"인천, 제2의 고향" 지역·역사성 관심
유리병 편지 北으로 '수취인불명' 발표

2020110501000230100011774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패배감과 상실감이 큽니다."

최근 파주출판단지 내 작업실에서 만난 김기라(사진) 작가는 코로나19 상황에서의 고민을 피력했다. 관람객과 만나고 교감하고 공감하는 게 예술의 소통 방식인데, 그럴 수 없는 현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거였다.



김 작가는 "소통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체하는 수단으로 떠오른 온라인 등을 통해 단순히 작품을 '봐라'는 것은 관람객에 대한 폭력적 처사로 느껴진다"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술가가 무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의 문제를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풀어내는 행동하는 작가'로 잘 알려진 김 작가다운 근황 설명이었다. 또한, 패배감과 상실감을 딛고 작가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현재 무얼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으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드러내는 새로운 작업을 준비 중이었다.

김 작가는 2003년 한 해에 70여 개의 전시를 치렀을 정도로 소위 '잘 나가는 작가'가 됐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을 마치고, 이어간 국내 작업을 통해 국제 갤러리에 입성하며 다시 한 번 '뜨거운 작가'로 부상했다.

작가는 또 변화를 꾀했다. 2012~2014년 인천아트플랫폼의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입주 작가로 활동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과거의 영광은 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작가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함몰돼 사는 것은 작가로서의 경력을 망치는 일이죠. 또한, 개항지이며 강화도와 서해5도 등 접경지이기도 한 인천에 대한 관심은 평소에도 많았어요. 그로 인해,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의 장기 입주 작가로도 있었고요. 서해 평화미술 프로젝트 등 아트플랫폼의 각종 프로그램과 전시회에도 참여하면서 3년 정도 인천에서 활동했는데, 이 기간이 저를 많이 깨우쳐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인천과 아트플랫폼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2020110501000230100011772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인천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란다.

"인천은 '온고지신'의 공간입니다. 인천에 있으면서 이념과 개인 역사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진정성을 담은 작업을 위해 지역성과 역사성을 고민했죠. 백령도 평화예술 프로젝트에도 참여했고, 이를 통해 '수취인 불명-북으로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어요."

'수취인 불명-북으로 보내는 편지'는 김 작가가 백령도의 두무진과 사곶해변 등 몇 개 포인트에서 편지가 담긴 유리병을 바다에 띄우는 모습을 담은 10분 정도의 영상 작품이다. 김 작가가 직접 한 내레이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냉면을 먹다가 당신 생각이 나 편지를 적습니다. 평양냉면. 남한에서 '평양'이란 이름이 이렇듯 친근하게 불리는 게 또 있을까요? 냉면집에선 '평양'을 큰소리로 외치건, 깃발에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평양'을 적어 펄럭이게 하건 누구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시내 한복판 광장이나 군중이 모인 집회 현장에서 펼쳐졌다면 아주 예민해졌을 텐데 말이죠." (중략)

"자고로 냉면 한 그릇은 왕부터 평민까지, 예부터 지금까지, 북에서 남까지 두루 섭렵했던 음식입니다. 맛에 대한 공감은 같은 기억의 공유가 아닐까요? 이건 우리가 한 핏줄이고, 한국말을 사용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후략)

김 작가는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루긴 힘들어도 문화적 통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냉면은 하나의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한반도는 갈등과 대립과 분노로 점철돼서 너무 뜨겁고, 사회·정치·문화·지역적 대립의 역사를 조금 가벼이 할 수 있는 음식"이라며 "냉면을 먹고 싶다고, 같이 한 끼 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내는 것은 조그만 행동주의적 방식이며, 그게 저한텐 중요한 작업 중 하나라고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끝으로 "세상은 작품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꾸는 것으로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제 작품을 보고서 조금 더 인간(애)적으로 전환하고 바뀐다면 그 사람이 나중에 사회의 리더가 되었거나, 혹은 어떤 사람일지라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우리 사회에 이런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으니 살아가는 동안 고민을 해달라는 제언 같은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2020110501000230100011773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경인일보 포토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김영준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