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백년가게 선정 수원 '쓰리에이안경점' 장영식 사장

장사 아닌 장인 정신…백 년 이백 년 갈 수 있도록 좋은 물건 좋은 서비스

이여진 기자

발행일 2020-11-1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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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백년가게 쓰리에이 안경 장영식 대표17
26년째 수원 권선동에서 시민들의 '눈'이 되어온 쓰리에이안경점이 지난 8월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누진다초점렌즈 안경을 들어 보이는 장영식(66) 사장.

# 두 동생 등록금 해결하려 장사의 길로
공무원 '박봉' 탓… 떡볶이 노점상 '두각'
8년간 일해 학자금 해결·종잣돈 1억 모아
손님없는 분식가게 '모자부페' 인생 쓴맛
"구매력 있는 고객층이 사업 확장에 중요"

# '최고의 신용·품질·정확' 소명의식
중심성 망막염 안과치료 받다가 '눈이 번쩍'
친구 아버지가게서 일 배우고 자격시험 합격
막상 가게문 열었지만 손님 지문 닦기 바빠
진열대 구조 변경·용접 배워 직접 수리·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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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는 말 그대로 '작은 가게도 백년 가라'는 뜻 아니에요? 좋은 물건을 팔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백년, 이백년 갈 수 있도록 좋은 가게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안경점으로는 최초로 경기도에서 '백년가게'로 선정된 수원시 권선구 '쓰리에이안경점' 사장 장영식(66)씨는 인터뷰 내내 안경사들의 소명의식과 손님의 눈을 위하는 마음을 강조했다. 흔하디 흔한 안경점이 백년가게로 선정된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는 듯했다.

장씨는 공무원 출신으로 안경사가 된 드문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성군청·부천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지만 벌이가 좋지 않았다. 9급 공무원 월급이 10만원 남짓이던 시절이다. 그는 두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

안 좋은 일로 계약금을 날린 후 1981년 시작한 떡볶이 노점 장사에서 그는 두각을 드러낸다. 가게가 하도 성업해 옷을 팔던 인근 상인들이 모두 업종을 떡볶이로 전환한 나머지 수원 남문백화점과 수원쇼핑 사이에 '떡볶이 골목'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는 '중고등학생을 대하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8년 동안 일해 동생들의 등록금은 물론 종잣돈 1억원을 모았다.

탄탄대로만 걸을 것 같던 장씨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노점상 8년간 번 돈으로 1988년 팔달문 옆 남문에 '모자부페'라는 가게를 냈지만 손님이 없었던 것. 당시만 해도 이른바 '먹토'(먹고 토한다)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1천500원에 모든 분식을 맛볼 수 있는 가게는 매력적이긴 해도 사업성이 떨어졌다.

그는 버티고 버티다 3년 만에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옆에서 장사를 하던 동료 사장은 품목을 갈비로 바꿔 지금의 가보정을 만들었다. 구매력 있는 고객층을 확보하는 게 사업 확장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이때 새롭게 눈을 돌린 게 안경점이다. 1986년 왼쪽 눈에 '중심성 망막염'(망막 염증으로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으로 안과 치료를 받았는데 이 때 안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치아는 한 개가 빠져도 살 수 있지만, 단 5분만 감고 있어도 불편한 게 눈'이었다.

마침 친구 아버지가 안경점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3단 책꽂이 만들기 경진대회에 나가서 입선하고, 겨울철 동네 친구들의 썰매도 곧잘 만들어줄 만큼 손재주가 좋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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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구 아버지 가게에서 안경 기술을 배웠고 1990년 안경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한다. 이어 근처 아파트가 분양할 때 상가 건물을 사서 안경점을 차린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4년의 일이다.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안경점은 손재주를 과시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니었다. 신참 안경점 사장에게 안경을 새로 맞추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손님들은 안경을 사기 전 스무 개도 넘게 써 보고 더러는 안 사기도 했다.

안경을 제작하는 것보다도 안경 렌즈에 묻은 지문을 닦고 진열대를 정리하는 게 하루 일과가 됐다. 새 안경을 사기보다 기존 안경을 수리·보수하는 손님이 더 많기도 했다.

장씨는 "진열대 구조를 바꿔 손님이 안경을 많이 건드리지 않아도 안경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구상했고, 용접 기술도 배워 안경 수리·보수를 직접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가게 한 편에는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금속테 안경 백여 개가 쌓여 있었다.

이런 노력이 발판이 돼, 누구보다 렌즈를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고도의 정밀함이 필요한 누진다초점 렌즈를 장씨는 기계 작업 후 손으로 직접 초점을 보정한다. 이렇게 해야만 안경을 썼을 때 어지러움을 줄이고 편안함이 커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터뷰공감 백년가게 쓰리에이 안경 장영식 대표8

장씨는 아직도 렌즈 초점을 안구 '왼쪽·중앙·오른쪽'의 세 군데에서 측정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다만 그 원칙을 고집하지 않고 현실에 맞게 고친다.

이론적으로는 초점을 하안검(아랫눈꺼풀)에 맞추는 게 맞지만 장씨는 초점을 그보다 약간 내려 잡는다. 새 안경을 썼을 때 어지러워하는 손님들이 많아서 선택한 길이다. "고객이 어지럽다면 어지러운 것이다"는 것이 장씨의 지론이다. 의사는 아니지만 흰 가운을 입은 전문가답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오래된 소상공인을 발굴하고 심사해 '백년가게'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처럼 대를 이어 가업을 승계하는 장인정신이 스민 가게를 만들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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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른 한살인 장씨의 아들 재웅씨 역시 안경사 시험을 치러 지난해부터 같이 일하고 있다.

아침마다 아들과 함께 흰 가운을 다려 입고 출근하면서 장씨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밝고 깨끗하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한다. 장씨의 다짐을 보여주듯 가게 안엔 '최고의 신용, 최고의 품질, 최고의 정확'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다른 한 편엔 장씨가 직접 모델로 나선 누진다초점렌즈 안경 사진이 붙어 있다. 올해 66세인 장씨가 흰 머리가 날 때마다 빠짐없이 염색을 하며 외모를 단정히 하는 데 철저한 이유도 바로 손님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가게 문과 마주하는 안경 진열장 뒷면에는 네임텍 여러 개가 붙어 있다. '꽃기린' '라벤더' 등 가게 안의 화초 이름은 물론 '사시·사위' 등 제법 전문적인 안구 질환 이름도 쓰여 있다. 안경점에 들어와 막상 안경과는 관계 없는 질문을 하는 손님에게도 빠르게 즉각적인 대답을 하기 위한 장씨의 노력이다.

인터뷰공감 백년가게 쓰리에이 안경 장영식 대표2

장씨가 강조한 '손님을 위하는 마음'은 고객이 어떤 질문을 해도 무안하지 않게 하는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을 위하는 마음과 더불어 장씨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단어는 '소명의식'이었다.

그는 독일의 '마이스터'처럼 안경사들도 장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장삿속에 빠지지 않고 진정으로 손님들의 눈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 백 년을 이어갈 우리 동네 백년 안경점의 미래가 더 기대된다.

글/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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