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토리]인천 신현동 '파평 윤씨' 집성촌서 발굴된 문화자료

오랫동안 품은 집안의 보물,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잇다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20-11-27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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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 윤문의 선생 송덕비. /윤길상씨 제공

부평부사 윤명선의 후손들 터잡아
조선시대 다양한 그림 문중서 보관
일제 항거에 앞장 섰던 '석천 선생'
구한말·일제강점기 수집한 작품 등
손자 윤길상씨 일부 경인일보 공개
"할아버지 뜻 지역·후세에 전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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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신현동은 계양구 오류동과 함께 파평 윤씨 집성촌이다. 조선 선조 때 윤명선이 부평부사를 지내고 은퇴 후에 오류동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의 후손들이 터를 잡으며 인천에 파평 윤씨 집성촌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 수많은 아파트와 빌라가 건립되고 외지인들이 몰려와 집성촌의 의미가 퇴색했지만, 여전히 신현동에는 파평 윤씨 후손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최근 이곳 신현동의 파평 윤씨 문중에서 가치 있는 문화재들이 발견되고 있어서 화제다. 조선시대부터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그림을 비롯해 석천(石泉) 윤문의(1905~1984) 선생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수집한 자료, 이후 교류한 문인들의 작품까지 광범위하다.

문중 관계자에 따르면, 석천 선생은 이름난 한학자였다. 인천부 신현동에 거주하면서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지역 문맹 퇴치운동에 참여했다. 서당을 개설해 후학을 양성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또한, 선생은 경기도와 호남 문인들과 교류했으며, 해방 후엔 현재의 신현동 노인회관 용지를 기증하는 등 지역 사회사업에도 공헌했다고 한다.

현재 신현 경로당 입구 옆에는 석천 선생의 공덕을 칭송하는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비에는 한자로 '인천직할시 북구 신현동 분회 회장 윤문의 송덕비'라고 새겨졌다.

석천 선생의 송덕비를 확인하기 위해 늦가을 신현동을 찾았다. 송덕비를 사진기와 마음에 담고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회화나무를 찾았다. 나무 한 그루가 차지하는 면적이 656.35㎡이며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이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315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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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2020.11.26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꽃 피는 상황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곤 했단다. 꽃이 수관의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 피면 풍년이 든다는 거였다.

또한, 회화나무는 수형과 잎의 모양이 좋아 예로부터 학자들이 서당이나 서원 등에 즐겨 심어서 '학자나무'로도 불렸다고 한다. 나무 옆에 서니 '신현동의 과거와 현재를 이 나무가 이어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석천 선생의 손자 윤길상씨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조선시대 그림을 비롯해 할아버지께서 직접 소장하셨던 자료들을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인일보에만 유일하게 자료들 중 일부를 공개했다. 자료들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해설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고미술사가의 도움을 받았다.

자료들의 소개를 마친 윤길상씨는 "할아버지의 유품 중 소개한 자료들을 비롯해 고서화와 고서적 등이 상당 부분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자료를 정리해서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품은 높은 뜻을 지역민과 후세에 전하는 작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천 '조선중기 민화' 발견

■ 조선중기에 그려진 옥황상제와 열명의 제자

첫 번째 자료는 조선 중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옥황상제와 열 명의 제자가 함께 화폭에 담긴 민화이자 기록화이다. 그림의 하얀색 부분은 조개껍데기를 빻아서 만든 호분으로 채색되는 등 그림 전체에 식물성 안료가 사용됐으며, 순금으로 금박을 입힌 부분도 있다.

종이 또한 중국에서 수입된 명금당지이다. 당대 최고 재질이었던 이 종이는 비싸서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지체 높은 가문에서나 보유할 수 있는 그림이며,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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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그림으로 추정되는 화조 민화

구한말 궁중 민화로 추정되는 화조 민화 또한 눈길을 끌었다. 광물질 안료인 녹석채로 그린 이 작품은 납 성분을 함유한 염분의 결정으로 인해 작품의 창작 시기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꿩과 기총새의 배치가 당시 시대상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전문 화원이 아니고선 흉내 낼 수 없는 매우 수준 높은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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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지사 신익희가 쓴 백거이 詩 '버려진 거문고'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는 삶의 성찰 사유를 시 '버려진 거문고'로 승화시켰다. 당시의 부패한 정치와 사회상을 시로 풍자·비판한 백거이는 단순한 세태 풍자를 넘어선 시(버려진 거문고)를 남긴 것이다.

이 시를 독립투사이면서 애국지사인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은 친필로 썼다. 해공 선생은 이 시를 수년에 걸쳐서 여러 차례 쓴 걸로 보이는 데,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자료는 민국(民國) 47년 중춘(仲春)에 쓰인 것이다.
'민국'의 의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1919년)을 의미하는지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1911년)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으나,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생이 만년에 쓴 글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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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천 선생과 교류나눈 지봉 정상호의 문인화

마지막은 석천 선생이 교류한 호남 문인들의 문인화이다.

진도 출신의 지봉 정상호(1899~1979) 선생은 일본 규슈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교육자로 활동했다. 전남대 농과대 학장과 전남 농무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허백련과 친구처럼 지내며 사군자를 배웠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윤길상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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