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기억해야 할 '국민방위군'

1·4후퇴를 앞두고 60만명 이상 반강제 징집
한국전쟁 70년 역사 속에 숨겨진 '민간인軍'
국가지원 못받아 상당수 아사·동사·전염병
관련보도 잇단 제보, 이제라도 재조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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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상 경제부장
한국전쟁 70년, 잊힌 군인들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역사 속에 숨겨진 '국민방위군'이다. 수십 만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민방위군은 상당수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다. 그나마 이들에게 지급돼야 했던 각종 국고와 물자들은 간부들이 착복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나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책 없는 징집에 수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책임도 없었다.

국민방위군 사건을 재조명해 준 유정수(1925~2010)씨의 일기에는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아내와 동생들에게 이 기록을 드리노라'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국민방위군에 징집된 1950년 12월23일부터 이듬해 3월까지 76차례 일기를 작성했다. 이 일기에는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 이동하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국민방위군 희생에 대해 어떤 보상도 사과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방위군은 한국전쟁 당시 반강제로 징집된 민간인으로 구성된 부대다.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다시 점령되는 1·4후퇴를 앞두고, 정부는 급하게 민간인을 징집해 국민방위군으로 편성했다. 이때 국민방위군 징집총수는 60만명 이상이다. 이들은 남쪽 지역에 설치된 교육대로 이동해 교육을 받았다. 이때 제대로 된 피복과 음식 없이 급하게 이동하며 상당한 국민방위군이 거리와 산속에서 동사하거나 아사하게 된다. 더욱이 어렵게 도착한 교육대는 시설이 열악했고, 질병으로 또다시 많은 국민방위군이 희생되기도 했다. 1950년 12월 17일 공포된 국민방위군 설치법은 사실상 강제 징집이었고 40세가 넘는 고령자나 학생, 공무원 등도 징집 대상이었다.



이들은 죽어서도 버림받았다. 대다수가 '전사통지서'도 받지 못했다. 유해가 암매장된 곳이라고 주장하는 곳은 현재 경작지로 바뀌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도 없다. 세월은 현장을 바꿔 놓았고, 기억에만 의존하는 증언들은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공식 사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다시 국민방위군을 조명하는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이정식(89) 명예교수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국민방위군 경험을 소개했다. 1950년에 국민방위군으로 활동한 그는 경인일보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피복이나 보급식과 같이 기본적인 국가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동한 것과 민가에서 식사를 얻어먹어야만 했던 열악한 환경을 설명했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성공회대 이임하 교수도 전염병을 매개로 국민방위군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 '전염병 전쟁'을 펴냈다. 이 교수는 대부분 동사·아사로 피해를 입은 줄 알았던 국민방위군이 발진티푸스라는 전염병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전쟁 당시 징집된 국민방위군이 전염병인 발진티푸스를 전국적으로 퍼뜨린 원인이었던 것인데, 군복조차 지급받지 못한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징집당했기에 발생한 일로 국가의 과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는 주장이다.

이 때 징집됐던 국민방위군 가운데 일부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관련 보도를 접하고 본인이 전염병으로 피해를 입었고, 증언해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 대부분은 과거 강제 징집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사실이 묻히기를 바라지 않는 데서 시작하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제보자 대부분이 90세가 넘는 고령으로 자녀 등 가족들이 주선돼 피해 구제와 명예 회복에 나서고 있다. 쉽지는 않다. 워낙 오래전 일이고 관련 증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관심이다. 강제로 징집됐던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들에 대한 구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방위군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정부의 빠른 대처와 노력을 기대해 본다.

/조영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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