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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송암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 관련 유물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의미

세종대왕 마음으로 점자문맹 퇴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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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출생
조선총독부 제생원내 맹아부서 교직 활동
제자 이종덕 등과 '점자연구위' 비밀리 조직
훈민정음 창제원리 이용 '우리말 점자' 발표

제작과정 기록일지 등 48점 제800-1호 지정
한글 익히는 역사 담긴 유물 7건 14점 '2호'
인천시, 세계문자박물관에 상설 전시관 계획
송암 정신·훈맹정음의 우수성 세계 전파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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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눈으로 보고 하는 일이 많지마는 눈으로 보아야하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도리어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틀림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종이 위로 볼록 튀어나온 좁쌀 크기 만한 점을 손가락 끝의 미세한 감촉만으로 읽어야 하는 시각장애인 점자(點字). 가로 2점·세로 3점의 총 6점으로 구성된 점자는 총 64가지 조합으로 한글 점형을 만든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한글 점자는 1926년 인천 강화 출신의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이 발표한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바탕으로 한다. 훈맹정음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원리를 기초로 만든 우리말 점자다. 지난 4일 문화재청은 훈맹정음 관련 유물을 국가 등록문화재(제800-1호, 800-2호)로 지정했다.

관련 유물은 현재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의 송암 박두성 선생 기념관에 전시돼 있고, 2022년 송도국제도시에 개관하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훈맹정음 상설전시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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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박두성 선생은 1888년 4월 26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에서 태어났다. 1895년부터 4년 동안 강화도의 보창학교에서 신교육을 받았고, 한성사범학교로 진학한 후 어의동보통학교에서 교직자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송암(松庵)이라는 호는 임시정부 최초의 국무총리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동휘로부터 받았다. 이동휘는 그가 다닌 보창학교의 설립자인데 1911년 "암자의 소나무처럼 절개를 굽히지 말라"는 의미의 아호를 지어줬다고 한다.

그는 이후 일제가 설립한 조선 총독부 제생원내 맹아부에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된다. 당시 맹인교육이 청각·주입식 교육에만 집중됐던 상황에서 송암은 점자의 필요성을 깊이 느꼈다고 한다. 1913년 일본에서 점자인쇄기를 들여와 비록 일본어이나 한국 최초로 점자 교과서를 출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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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기념관에 전시된 맹인 교육 서적.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가 조선어 과목을 없애려 하자 송암은 "눈 밝은 사람들은 자기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읽고 쓸 수 있지만, 실명한 이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 먼데다 벙어리까지 되란 말이요?"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송암은 1920년 본격적으로 한글 점자 연구에 몰두해 제자인 이종덕, 전태환 등 8명과 함께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육화사)를 비밀리에 조직했다. 훈맹정음의 집현전과 같은 기능을 했다.

송암은 시행착오 끝에 1926년 11월 4일 세상에 6점으로 구성된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발표하고, 전국 맹인들에게 취지문을 발송했다.

세종실록 기록에 따라 훈민정음 반포일로 기념하는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1월 4일 훈맹정음을 반포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제정한 훈민정음 취지처럼 맹인을 위해 만든 글자라는 뜻으로 훈맹정음이라 이름 지어 발표했다. 오늘날까지 매년 11월 4일은 한글 점자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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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이 제판기로 점자책을 만드는 모습.

선생이 만든 훈맹정음은 이후 조금씩 개정돼 1947년 국립맹아학교에 있던 선생의 후학들이 개정된 한글에 맞춰 새롭게 문장 부호를 넣었고, 1963년에는 옛 한글 점자가 추가됐다. 이어 1967년에는 수학 점자가, 6년 뒤에는 과학 점자가 만들어졌다.

현재 사용되는 한글 점자는 1994년 11월 한글점자연구위원회가 발표한 '한글 점자 통일안'을 기초로 한다. 1997년 당시 문화체육부가 한국 점자규정을 고시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점자는 대개 4.2㎜ × 6.6㎜의 공간에 세로 3점, 가로 2점 총 6개 양각의 점으로 글자를 형성한다. 지금의 한글 원리처럼 초성과 중성, 종성이 구분된 6점형 점자다.

'한글'이라는 단어는 2음절이지만, 점자는 'ㅎ ㅏ ㄴ ㄱ ㅡ ㄹ'에 해당하는 점형 6개를 나열해 구성한다. 문장기호와 숫자, 영어, 줄임말 등도 점자로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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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기념관에 전시된 점자 타자기.

박두성은 점자를 개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실제로 보급하기 위해 통신교육과 강습회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였다.

그는 평소 시각장애인들에게 "너희들이 눈은 비록 어두우나 마음까지 우울해서는 안 된다. 몸은 비록 모자라도 명랑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안 배우면 마음조차 암흑이 될 테니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판쯤은 놓을 수 있어야 내 주머니의 것이라도 간직하고 살 수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에게 주판을 가르치는데도 열중했다.

송암은 점자를 활용한 각종 서적의 점역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성경전서, 이광수전집, 명심보감, 천자문, 이솝우화, 신문 등을 맹인을 위한 읽을거리로 만들었다. 점자는 점자판(점자기)의 점칸에 송곳처럼 생긴 점필을 이용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간다. 읽을 때 뒤집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가는 식이다.

그는 1931년 제생원 맹아부 서리를 맡았는데 48세로 퇴직할 때까지 한글점자의 보급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평생을 맹인교육을 말하면서 살다가 지병을 얻어 1963년 8월 25일 중구 율목동 자택에서 7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점자책은 쌓지 말고 꽂아…"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점자책은 쌓아두면 책 무게에 눌려 볼록한 돌출부가 망가질 수 있으니 책장에 꽂아서 보관하라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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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흉상. /인천시 공식블로그 제공

이번에 지정된 국가등록문화재는 송암의 훈맹정음 창제 원리가 담긴 각종 서적과 점역서, 인쇄기 등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800-1호인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은 훈맹정음의 사용법에 대한 원고, 제작과정을 기록한 일지, 제판기, 점자인쇄기(로울러), 점자타자기 등 한글점자의 제작·보급을 위한 기록, 기구 등 8건 48점이다.

당시의 사회·문화 상황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근대 시각장애인사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문화재 등록 가치가 높다.

국가등록문화재 제800-2호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는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한글점자의 유래 초고본 등 한글점자의 유래와 작성원리, 구조와 체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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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맹정음 앞면. /문화재청 제공

 

훈맹정음이 창안돼 실제로 사용되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통해 당시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을 익히게 되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해당 유물은 7건 14점이다.

인천시는 2022년 개관을 목표로 송도국제도시에 건립을 추진 중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훈맹정음 상설 전시관'을 마련해 관련 유물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송암 박두성의 정신과 훈맹정음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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