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토리]'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이 던진 과제

부실한 대응과 무관심…8.7일마다 생기는 '또 다른 정인이'

손성배 기자

발행일 2021-01-15 제10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정인이 살릴 기회' 최소 세번이나 놓쳐
학대 의심 정황 없다며 사건종결 비난 여론… 경찰청장 사과

5년전 평택 '원영이'도 목숨 잃어… 계모 친부 징역 27·17년형
2014~2019년 아동학대 사망 160건… 학대 신고는 경기도 최다

제정민법 이후 64년만에 '체벌 금지'… 관련법안 쏟아졌지만
전문가 "현장 조사원의 '구조조치 권한 행사 근거' 절실하다"


2021011401000551000026083
지난 13일 서울 양천구 16개월 여아 학대 사망 사건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입양 후 개명 전 이름인 '정인이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10월13일 정인이는 입양모의 학대와 입양부의 학대 방조 속에 492일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입양된 지 10달 만이었다.

1차 공판에서 검찰은 정인이 양모 장모씨에 대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보다 처벌 수위가 높은 살인죄를 적용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양모 장씨 측 변호인은 "고의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공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법 앞은 붉은 글씨로 '사형'이라고 적은 피켓을 든 시위 참가자들의 분노에 찬 외침으로 가득했다.

앞서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부실 대응이 질타를 받았다. 정인이를 살릴 기회는 최소 3번은 있었다.

경찰은 3차례 학대 신고를 모두 학대 의심 정황이 없다며 종결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지난 4일 게시된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는 청원글의 참여인원은 이틀 만에 정부·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넘어섰고 14일 현재 30만7천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6일 사과를 했다.

# 정인이 사건 5년 전 평택 원영이 사건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과거 공분을 산 아동학대 살인 사건이 있었다. '평택 원영이 사건'이다.

원영이(사망 당시 6세)의 친부 신모씨는 2013년 8월 원영이와 누나에게 새엄마 김모씨를 데려왔다. 계모는 남매를 보면 그들의 친엄마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학대를 하기 시작했다.

판결문을 보면 집안 발코니에 감금하고 요강에 볼일을 보게 하면서 훈육을 빙자해 과도한 체벌을 하는 등 비인격적으로 학대했다.

화장실에 원영이를 가둔 것은 2015년 11월이었다.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수개월간 난방도 되지 않는 추운 겨울, 좁은 화장실에 가두고 식사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락스 원액 2ℓ를 끼얹어 전신 화상을 입게 했다.

결국 원영이는 2016년 2월1일 이 화장실 안에서 머리 부위 손상, 쇄골 골절, 극심한 영양실조를 겪다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시신을 열흘 넘게 발코니에 방치하다 친부 아버지의 묘지 인근에 몰래 매장했다.

이 사건을 맡은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계모 김씨와 친부 신씨의 살인, 사체은닉,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상습특수상해) 등 혐의에 대해 각각 징역 20년,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쌍방항소로 열린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1심에서 무죄 판단한 정서적 학대 행위로 인한 아동복지법 위반(상습아동학대) 혐의를 인정해 형량을 징역 27년, 징역 17년으로 높였다. 사건은 지난 2017년 4월 상고를 기각하면서 확정됐다.

KakaoTalk_20210114_161211837
지난 13일 생후 16개월된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 취재진과 시민들이 모여있다. 2021.1.13 /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

# 5년간 160건의 아동학대 사망. 삭제된 민법상 징계권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집계한 아동학대 사망사고 발생 건수는 총 160건이다.

최신 통계인 지난 2019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총 42건이었다. 8.7일에 1건 꼴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원영이, 정인이 사건이 종종 발생했던 것이다.

전체 아동학대 신고접수 건수는 2019년 한해에만 4만1천389건으로 전년보다 13.7% 늘었다. 광역지자체별 신고접수는 경기도가 9천997건(26%)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3천353건(8.7%), 인천 3천33건(7.9%)으로 그 뒤를 이었다.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피해 아동의 가족 유형은 친부모 가족이 1만7천324건(57.7%)으로 절반을 넘겼다. 친부모가족 외 형태(부자·모자·미혼 부모·재혼 등)는 1만146건(33.8%), 가정위탁, 입양가정, 시설보호 등 대리양육형태는 372건(1.2%)으로 미비했다.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를 열고 정인이 사건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민법상 자녀 징계권 조항도 삭제했다. 1958년 제정민법 이후 64년 만에 부모의 자녀에 대한 체벌이 금지됐다.

현행 민법 915조(징계권)는 친권자는 그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5.jpg
13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 양의 사진이 놓여있다. 2021.1.13 /연합뉴스

# 쏟아진 아동학대 관련 법안

정인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아동학대 관련 법안이 쏟아져 나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49개 중 24개가 지난해 10월 이전 발의된 법안이었고, 나머지 25개는 정인이 사건 이후에 나왔다. 특히 지난 5일부터 이날까지 아동학대처벌법 19건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가 마련한 정인이법에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의 신고가 있는 한 즉시 조사 또는 수사에 착수한다는 내용과 현장조사를 위한 출입 장소 확대, 아동학대 행위자와 피해 아동 등의 분리조사, 수사기관과 지자체 간 현장조사 결과 상호 통지 등이 담겼다.

피해 아동에 대한 응급조치가 가능한 기간에서 공휴일과 토요일을 제외해 48시간 범위에서 응급조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응급조치 기간의 상한은 72시간이다.

아동학대 관련 교육 대상에 현행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 외에 사법경찰관리에 대해서도 아동학대사건의 조사에 필요한 전문지식, 법에서 정한 절차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아울러 아동학대 범죄와 관련한 업무 수행을 방해한 사람의 벌금형을 기존 1천500만원에서 5천만원 이하로 높였다. 과태료도 현행법상 500만원 이하에서 1천만원 이하로 상향했다.

전 국민 신고 의무화와 아동학대 범죄 징역형 상향 등은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고,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시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한다는 내용도 빠졌다.




# 남겨진 과제

정인이 사건에 대해서도 공분이 일면서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다.

하지만 형량을 높이면 증거 확보 등 실무상 입증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공소제기가 위축될 수 있고, 유죄 판결을 받기도 어려워진다는 의견이 전문가 집단에서 나왔다.

담당 공무원들이 학대 가해자들로부터 무분별한 소송을 당하고 있다는 점 역시 개선하고 보호해야 하는 지점이다. 경찰에서는 시·도경찰청 단위에 전문성 강화를 목적으로 아동학대범죄를 수사하는 특별수사대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장 조사원들의 권한을 보다 강화한다는 법령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조사원이 갔을 때 부모가 강력하게 거부할 경우 아동을 구조 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약했다"며 "부모가 반대해도 그 반대를 물리치고 학대 아동을 구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손성배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경인일보 채널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