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빚 권하는(?) 나라

2000년초 '신용카드 대란'을 겪은적이 있다
금융당국 알고도 '카드사 무한경쟁' 방치탓
작년 '영끌'이어 올해는 '동학개미' 무한질주
당시 데자뷔, '멈춰야' 목청에도 당정 '모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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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정치부장
2000년대 초반, 이른바 '신용카드 대란' 당시. 무려 3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신용불량자가 돼 하루아침에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길거리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금융 쇼크에 휩싸인 적이 있다.

국내 굴지의 카드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 사회 초년생들과 뚜렷한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분별한 경쟁을 통해 신용카드를 발급해주었고, 그 한도를 높여 주었다.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너도나도 카드 빚더미에 내몰렸다. 10여년이 지나 "(당시)금융당국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카드사들의 무한경쟁을) 방치했다"는 것이 현재도 카드사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씨의 전언이다.('신용불량자' 제도는 2005년 '금융 채무 불이행자'로 명칭을 변경한 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란 신조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유선생(유튜브를 통해 주식투자 기법 등을 강의하는 사람)의 학생'들이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로 무장해 국내외 주식시장의 판도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국내 굴지의 관련 회사 회장도 5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변형된 형태의 주식투자 강의를 할 정도로 관련 업계는 '주린이(주식 어린이)'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이 20여년전 벌인 무한경쟁의 데자뷔다.

이 때문인지 증권업계 및 투자금융협회 등의 추계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대략 700만명으로 파악하는데 지난 한 해에 100만명 가까이 증가했다.

동학개미들의 무한질주가 두려움을 넘어 공포스럽다. 일부 전문가들은 광기(狂氣)라고도 표현한다. '포모(FOMO·Fears Of Missing Out, 모두들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데 나만 물먹는 것 아니냐)'란 용어가 20대 대학생들과 30대 초보 직장인, 40대 가정주부, 50~60대 은퇴자들의 입에 붙어 다닌다.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코스피(KOSPI)와 코스닥(KOSDAQ)을 합쳐 22조7천억원(2019년 9조3천억원)이었는데 지난 8일에는 무려 60조원이었다. 코스피가 하루에 100포인트 이상 널뛰기를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실물과 괴리가 있다"며 경고장을 날리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잇따라 경고장을 날리고 있지만 제어가 전혀 안 된다. 시장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이 없다. 심지어 향후 증시 대폭락시 "난 그래도 경고를 했었다"란 면피용이라는 일부 분석이 나올 정도다.

급기야 3월15일로 끝나는 공매도 금지 기간이 시험대에 올랐다. 동학개미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2차 연장을 해달라고 국민청원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동조하고 지도부도 가세하자 금융당국도 한발 물러선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금융위원회 업무계획 관련 '온라인 사전 브리핑'에서 "공매도 문제와 관련해 단정적인 보도가 나가는 것은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광기(狂氣)와 포모(FOMO)로 장착하고 폭주하는 기관차를 누군가는 멈추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와 여당에서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흘러 증권업계 종사자로부터 "금융당국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빚 권하는 나라가 될 순 없지 않겠는가?

/이재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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