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 칼럼]외투

전호근

발행일 2021-01-26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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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호소 노숙인에게 벗어준
행인이야말로 진정한 가치 입증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옷 덕분에 따뜻해진 건
노숙인만이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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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조간신문을 받아들었다. 1면의 왼쪽에는 한 재벌 총수가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널찍하게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오른쪽에 실린 사진은 대번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문의 1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운데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외투를 입혀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풍경을 접하기라도 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아래의 설명을 읽어보았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서울역 광장이었다. 추위에 떨던 어느 노숙인이 광장을 지나던 사람에게 너무 추워서 그러니 따뜻한 커피 한 잔만 사달라고 부탁했단다. 그러니까 사진의 두 사람은 노숙인1과 행인1인 셈이다. 여기까지의 장면은 흔히 있는 일이다. 나도 서울역 광장을 지나다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진이 포착한 장면은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풍경이었다. 노숙인의 청을 들은 그 행인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입혀주고는 지갑에서 5만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내 건네준 뒤 눈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이들도, 나처럼 신문지면을 통해 사진을 본 사람들도 모두 현실감이 없기까지 한 그 장면에 뭔지 모를 상념들이 머릿속을 오갔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눈 속으로 사라진 그 행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다가 러시아의 문호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를 떠올렸다. 페테르부르크의 말단 관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왜소한 체구에 머리가 약간 벗겨진 보잘것없는 외모의 소유자로 동료들로부터 늘 무시당하는 처지였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정직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 수선할 수 없게 되자 새 외투를 사기로 마음먹는다. 외투는 무척 비쌌지만 외투 없이는 페테르부르크의 매서운 추위를 견딜 수 없기에 그는 저녁 끼니를 거르고 밤에 촛불도 켜지 않는 궁핍한 생활 끝에 마침내 새 외투를 구입한다.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하던 날 그는 외투의 따뜻한 온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데서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외투란 단지 추위를 견디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멸시를 물리치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잠시 행복한 순간을 맛보지만 그날 연회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는 불행을 당하고 만다. 다급해진 아카키예비치는 외투를 찾기 위해 경찰서장과 고관을 찾아가 도움을 호소하지만 돌아온 건 호된 질책뿐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집에 돌아온 뒤 급성 폐렴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소설의 중요한 대목은 이후부터다. 아키키예비치가 죽은 뒤 페테르부르크 거리에는 행인들의 외투를 빼앗아가는 유령이 출몰한다. 아카키예비치의 유령이 나타난 것이다. 외투를 찾아달라고 호소하던 생전의 아카키예비치에게 그까짓 일로 나를 찾아왔냐며 호되게 질책했던 고관도 그 유령을 만난다. 그가 외투를 빼앗긴 뒤에는 유령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서장과 고관은 왜 도움을 호소하는 그를 질책했을까? 그에게는 외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카키예비치의 외투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실은 그 같은 말단 관리의 삶이야 어찌되든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고관은 유령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외투'의 외투는 인간의 속물적 욕망을 상징한다. 아카키예비치가 새 외투를 사기 위해 끼니마저 굶는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동료들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추위를 막아주는 외투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앞의 외투가 껍데기라면 뒤의 외투야말로 외투의 진정한 가치다. 그러니 외투의 진정한 가치는 걸칠 때가 아니라 벗을 때 드러나는 것이다.(아카키예비치도 고관도 외투를 빼앗기면서 외투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사진을 다시 본다. 추위를 호소하는 노숙인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준 사진 속의 행인이야말로 외투를 벗음으로써 외투의 진정한 가치를 입증한 사람이 아닌가.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외투 덕분에 따뜻해진 건 그 노숙인만이 아니었다고.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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