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김명수 대법원장

윤인수

발행일 2021-02-09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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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대한민국 양심에 좌절한 국민들
'법률 차치' 법·정치 동격인식 정치적 의심
자신이 '삼권분립 한 축'임을 스스로 부인
대법원 사법정신 훼손 당사자가 치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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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지난해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은 진보진영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런 긴즈버그가 자신의 생애에 흔치 않은 오점을 남겼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그가 당선되면 이민 가겠다"고도 했다. 연방대법관의 정치발언에 비난 여론이 일었다. 긴즈버그는 "경솔했고 후회한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우리 같았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일이다. 대법원의 밤은 촛불로 대낮처럼 환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긴즈버그의 사과로 넘어갔다. 연방대법원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웬만한 정치 시비로 깨지지 않는다. 미국인은 연방대법관들을 정의의 화신(Justice)으로 존칭한다. 연방대법원장(Chief Justice)은 정의의 수장이고, 8명의 연방대법관(Associate Justice)은 각자가 정의의 일원이다. 미 헌법 3조는 '선한 행동을 하는 한(During Good Behavior)' 대법관의 임기를 보장한다. 악한 행동을 할 리 없다는 믿음으로 종신직을 보장한 것이다.

트럼프는 재임 중 한 판사가 자신의 이민정책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놓자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했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공식 성명으로 답했다. "미국에는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나 '클린턴 판사'는 없다. 우리에게는 자신들 앞에 선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대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의 비범한 집단만 존재할 뿐이다." 연방대법관은 정파가 임명하지만 정파를 초월한 정의의 수호자로 신뢰받기에 연방대법원은 권위를 유지한다. 트럼프를 아무리 미워해도, 트럼프가 법정에 서면 정의에 따라 공평하게 판결할 것이란 신뢰가 있다. 긴즈버그가 죽음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 대법원도 그랬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를 겪고서도 대법원은 권위를 존중받았다. 대법관은 정파가 임명하지만 판결은 정파를 초월한다는 신뢰가 있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찬반 시비와 정파적 해석들은 최소한의 의사표명이었지, 대법원에 대한 부정은 아니었다. 국민은 대법원 부정을 대한민국 정의의 부정으로 여겨 선을 넘지 않았다. '임성근 판사 녹취록' 이전까지는 그랬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대법원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대한민국 양심의 본산인 대법원의 정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녹취행위의 도덕성을 문제 삼지만 사족이다.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덮기엔 역부족이다. 국민들은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양심의 보루가 무너진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남다른 정치적 감수성도 거짓말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생각해야 하잖아. 그중에는 정치적인 성향, 상황도 살펴야 하고." 사표 수리를 요청하는 임 판사에게 김 대법원장이 한 말이다. 차치(且置)의 사전풀이는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아니함'이다. 대법원장이 법률을 차치한다? 법을 정치적 상황과 동격으로 인식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법원은 정치적 의심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래 설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그 국회에서 또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말이야." 대법원장 자신이 삼권분립의 한 축임을 스스로 부인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권력 오·남용의 문제였다. 행위의 적법성 문제다. 재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이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거짓말과 정치적 감수성과 삼권분립 부정으로 대법원의 정의를 이단적 정치 영역에 하차시켰다. 사법정신 훼손의 문제다. 당사자 말고는 치유할 방법이 없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을 'CJ'로 약칭하는 모양이다. 미 연방대법원장의 존칭(Chief Justice)에서 착안했을 것이다. "한국에는 '박근혜 판사'나 '문재인 판사'는 없다." 이렇게 당당할 수 있어야 가능한 약칭이고 존칭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정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봐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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