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6 오산 할머니집]80년 노포, 소머리 설렁탕의 깊은 맛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 단 2가지 단출한 메뉴

설렁탕 끓인 37년간 닳아 구멍난 무쇠솥도 여럿

3년 전부터 둘째 아들이 다음 대를 이을 준비

대를 이어온 손님들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

인위적 조미료 없이 정성으로 만드는게 '비법'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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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할머니집 소머리 설렁탕/디지털콘텐츠팀

#무쇠솥에 구멍이 나기까지

손끝마저 아린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백년가게는 80년 역사를 간직한 '오산 할머니집'이라는 노포입니다. 메뉴는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 단 2가지로 단출합니다. 메뉴판부터 주인장이 가진 음식 맛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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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할머니집 박명희 4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

이 식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정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대 박명희 사장의 시증조모께서 해방 이후부터 가게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국이 시국이었던지라, 영업 초기에는 별도 메뉴가 없었다고 하네요.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거나, 손님들이 해달라는 음식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합니다.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37년 전쯤부터 입니다. 37년 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으면, 이 시간 동안 고기와 육수를 끓이는 무쇠솥에 구멍이 나 바꾼 솥도 여러 개라고 하네요. 세월의 힘은 무쇠도 뚫는가 봅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원래 남편이 맡아서 했는데, 남편이 하니까 자동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10년 전쯤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부터는 혼자 식당을 운영했어요. 옆에서 어른들이 도와주니까 할 수 있었겠죠.(웃음)"(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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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할머니집 김상겸 5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

3년 전부터는 둘째 아들인 김상겸 사장이 다음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어요. 어머니께서 '젊은 나이니까 사회생활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저희 할머니도 몸이 안 좋으셨는데, 어머니께서 식당 운영에 뒷바라지까지 하시니까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들어와서 일을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죠."(김상겸)

밖에서 볼 때는 전통을 이어가려는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이들 모자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습니다.

식당 운영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명희 사장은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들인 김상겸 사장 역시 '할 거 없으면 가게 물려 받으면 된다'는 식의 주위 시선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쉽지 않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도 나이가 많지 않다 보니까 한 자리에 묶여 있는 게 답답할 때가 있죠. 장사라는 게 쉬는 날이 없고 아침 일찍 나와 밤 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인데,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사람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김상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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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산 할머니집 1~4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

#손님도 대를 잇는다

오래된 가게는 주인만 대를 잇는 게 아닙니다. 손님도 대를 이어 단골이 되기도 하는데요. 특히, 오산 할머니집은 같은 자리에서 단골 손님 위주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다 보니, 주인과 손님과의 관계가 남다르기 그지없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 오던 아이가 지금은 자기 아이를 업고 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가게만의 매력입니다.

"나이 드신 할아버님인데, 서울 잠실에서 전철 타고 오산역에 내려서 식당까지 걸어오는 분이 있어요. 오셔서 설렁탕 한 그릇이랑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시는데, 이 분은 항상 오시면 옛날 이야기를 들려 줘요. 단골 손님 중에 철강회사 대표 분도 있는데, 이 분은 매번 고급 외제차를 타고 와서 설렁탕에 소주 한 잔 하고 돌아가세요.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정말 많죠."(박명희)

오산 할머니집은 다른 유명한 노포 만큼 손님이 많은 곳은 아닙니다.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메뉴를 다양화하거나, 자리를 옮길 생각도 없다고 하네요. 이 역시 잊지 않고 가게를 찾는 단골 손님들을 생각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저희 생활 유지할 만큼 계속 장사를 해왔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가게 규모를 지금보다 키우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어요.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이 동네보다 (장사하기) 좋은 동네로 옮겨서 했겠죠. 저희 생각해서 꾸준히 오는 분들을 위해 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어요."(김상겸)

오랜 역사만큼이나 가게를 설명하는 수식어도 늘고 있습니다. '백년가게' 뿐만 아니라 '줄 서는 식당', '대물림 가게'까지 칭호가 하나 둘씩 늘 때마다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한 것도 소홀하게 한 건 없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죠. 애들한테도 더 열심히 하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그러죠."(박명희)

"그냥 그런거 있잖아요. 항상 그곳에 가면 거기에 있는 곳. 그런 가게가 되고 싶어요. 오래 전에 오셨다가도 '그 집 참 좋았는데' 하며 찾으면 그 자리에 있는 가게. 그렇게 남고 싶습니다."(김상겸)


#비법 없는 비법

오래 장사를 한 식당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맛의 '비법'. 오산 할머니집은 그런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 집의 소머리 설렁탕엔 인위적인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고기와 뼈로 진한 육수를 만듭니다. 비법이라고 한다면 소머리를 손질하고 씻어내는 방법입니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라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를 잡기 위한 세심한 손질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소 머리부터 깍두기에 사용되는 무와 양념까지 모두 국산입니다.

오산 할머니집은 설렁탕이나 수육을 주문하면 토렴 방식으로 음식을 데워 손님상에 내놓습니다. 토렴은 '음식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것'으로 가스 불이 흔하지 않았을 때 음식을 데우는 전통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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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할머니집 수육/디지털콘텐츠팀

설렁탕은 넉넉한 고기와 함께 국수가 말아져 나옵니다.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국물 맛이 인상적입니다. 기호에 맞게 소금간을 하면 됩니다. 수육은 설렁탕에 들어간 고기와 유사하면서도 보다 쫄깃한 고기의 식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안줏거리가 될 것입니다. 김치와 깍두기, 부추김치 등 김치 맛은 짭짤하면서도 식감이 제대로 살아있습니다.

오산 할머니집처럼 한결같은 맛을 지키며 장사를 할 자신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오산 할머니집 맛의 비법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산 할머니집 주소: 오산시 오산로300번길 3. 영업시간: 오전 10시 ~ 저녁 9시(오후 3시 ~ 오후 5시 브레이크타임/매주 일요일 휴무). 메뉴: 소고기 설렁탕 보통 1만원, 특 1만2천원. 소머리 수육 3만5천원, 반 접시 1만8천원.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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