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박신의 선녀였던 홍장

김윤배

발행일 2021-02-26 제14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2021022601000989500047362

강릉 기녀중 시문 출중 미모 빼어나
박신, 달콤했던 시간 보낸후 한양行
그녀는 연시쓰며 1년 되도록 기다려
드디어 그는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
박신에겐 홍장은 영원한 선녀였다


2021022601000989500047361
김윤배 시인
박신(1362~1444)은 고려의 공민왕 11년에 태어나 조선조 세종 26년에 세상을 떴다. 포은 정몽주의 문하생으로 수학했다. 그는 고려가 망하기 7년 전인 1385년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과 형조정랑을 지냈다. 조선조 개국 후에는 강원안찰사와 대사성, 그리고 이조판서를 지냈으니 고려와 조선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는 청렴하고 공정해서 칭송이 높았다.

그의 오랜 동지인 조운흘(1332~1404)은 나이는 박신보다 많았지만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였다. 조운흘이 강릉부사로 와 있을 때 박신이 강원안찰사로 가게 되었다. 두 사람이 조촐한 주안상을 앞에 놓고 회포를 푸는 자리에 천하일색 홍장이 함께 했다.

박신은 홍장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았고 홍장 역시 박신의 인품과 격조 있는 언행에 마음이 갔다. 홍장은 강릉고을 기녀 200여명 중 시문과 기예가 출중하고 자태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두 사람은 격하게 끌려서 깊은 인연을 맺었다. 꿈같은 며칠이 지나 박신은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박신은 매일 홍장을 꿈꿨다. 그녀의 미소와 시문, 자태 고운 춤사위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미칠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강릉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박신은 먼저 관아로 조운흘을 찾아갔다.

돌아온 박신에게 친구인 부사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했다. 홍장이 오매불망 박신을 기다리다 병이 들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박신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홍장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도 몸져누워 앓았다.

조운흘은 박신과 홍장의 극적인 만남을 위한 계책을 홍장에게 말하고는 그녀를 선녀처럼 아름다운 치장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화려한 화선, 꽃으로 꾸민 배를 준비시켰다. 늙은 아전을 한 사람 뽑아 의관을 갖추고 도포를 입혔다. 당당한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아 보였다. 홍장을 실은 화선 위에 다음과 같은 시를 걸어두었다.

'신라 성대의 늙은 화랑 노닌 곳이니/천년의 풍류 오히려 잊지 않았다네/듣기로는 귀하신 분께서 경포에 노닌다고 하나/배에는 차마 홍장을 싣지 못했네'.

조운흘은 병석의 박신을 찾아가 그를 위로하고 회유하여 경포대로 나섰다. 경포에서 술을 마시면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박신을 설득한 것이다. 한송정은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주안상이 차려지고 밤안개 사이로 달빛이 그윽하게 경포에 내렸다. 안개를 휘저으며 화선 한 척이 경포를 유유히 밀고 왔다. 배가 가까이 오자 배에 타고 있는 신선과 선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박신은 경포에 밤안개가 내리면 신선과 선녀가 내려온다는 부사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 걸려 있는 시문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배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배에는 차마 홍장을 싣지 못했네'라는 구절을 읽고는 선녀가 홍장인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친구 조운흘의 연출인 것을 안 박신은 우정이 밉고도 고마웠다.

달콤하고 뜨거운 몇 달을 강릉에서 홍장과 보낸 박신은 한양으로 떠났다. 떠나며 남긴 시가 '젊어 소임을 받아 관동을 안찰하였는데/경포에서 놀던 일이 꿈속에 드는구나/대 아래 목란배를 다시 띄우고 싶지만/홍장이 쇠잔한 늙은이라 비웃을까 저어하네'에는 홍장에 대한 애틋함이 서려 있다.

한양으로 간 박신은 거의 1년이 다 가도록 연락이 없었다. 홍장은 절개를 지키며 박신을 기다렸다. 홍장은 박신에게 연시를 썼다. '울며 잡은 소매를랑 떨치고 가지 마소/풀빛 긴 제방에 해도 다 저물었네/객창에 등심지 돋우고 새워보면 알리라!' 기다림의 외로움을 당신이 어찌 알 것인가 하는 원망이 엿보인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그녀는 또 한 수를 짓는다. '한송정 달 밝은 밤 경포대에 물결 잔데/ 신의 있는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건마는/어이타 우리 왕손은 가고 오지 않는가?' 원망을 넘어 좌절이 느껴진다. 그러나 박신은 약속을 지켜 그녀를 한양으로 불러올렸다. 박신에게 홍장은 영원한 선녀였다.

/김윤배 시인

김윤배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