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가덕도 앞바다에서 이순신을 떠올린다

임병식

발행일 2021-03-01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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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예타면제로 특별법 처리
부산시장 보선 앞두고 여야 '담합'
표 앞에서 절차·혈세운용 무관심
이순신, 따뜻했지만 '일에는 엄격'
대통령도 특별법 고집 꾸짖었다면

임병식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난중일기를 다시 펼쳤다. 이순신은 임진년 1월부터 일기를 썼다. 그에게는 일기, 활, 어머니가 전부였다. "공무를 마친 뒤 활을 쏘았다." 일기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글이다. 더러는 부하들과도 함께 쐈다. 이순신에게 활쏘기는 유희가 아니었다. 시위를 당기며 정신을 가다듬고, 전쟁에 집중했다. 전쟁은 4월14일 부산포에서 시작됐다. 출전에 앞서 부하 장수들과 결의를 다졌다. "모두 격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했으니 실로 의사들이라 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부산 가덕도를 방문해 신공항 추진을 독려했다. 말 많던 가덕도 특별법이 통과되기 전날이다. 정부 핵심 인사들도 대거 함께했다. 경제부총리, 국토부·행안부 장관,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등 20여명이다. 갑판 위에서 문 대통령은 "국토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달라"고 했다. 가덕도는 적지가 아니라는 국토부 보고서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변창흠 장관은 "송구하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특별법은 통과됐다.

가덕도 앞바다는 임진왜란 당시 전쟁터였다. 430년이란 시차를 두고 이순신과 문재인은 바다에서 결의를 다졌다. 이순신은 왜적을 향해, 문재인은 부산 시민을 의식했다. 이순신은 왜군에 맞서 목숨을 걸자고 했고, 문재인은 가덕도 신공항을 독려했다. 결의라는 형식은 같았지만 내용은 달랐다. 난중일기를 읽다 가덕도를 찾은 문 대통령의 행보를 떠올린 이유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국토부는 안정성·시공성·경제성 등 7가지 항목에서 문제를 지적했다. 사실상 반대다. 사업비 또한 28조6천억원으로 부산시가 주장하는 7조5천억원보다 네 배 많다. 김경수 지사는 "언론이 터무니없이 부풀렸다"고 했다. 국토부와 정치인 중 누가 전문가일까. 그런데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특별법이 처리됐다.

가덕도 특별법은 특혜법이다. 통상적이라면 여러 후보지 중에서 객관적 검증을 통해 최적지를 고른다. 그런데 가덕도는 먼저 찍어놓고 입법으로 뒷받침했다. 앞뒤가 바뀌었다. 사사건건 으르렁대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손잡았다.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담합이다. 정치가 정책을 압도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마지막 둑은 무너졌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으로부터 선심성 사업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예타는 타당성을 따져 예산 낭비를 막자는 제도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비가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에 해당된다. 예타 통과는 필수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이 예타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국책사업 반영, 대선 공약 끼워 넣기, 사전타당성 조사를 동원해도 예타를 통과하지 못하면 안 된다. 예타는 엉터리 사업을 걸러내는 마지막 장치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은 예타면제로 뜨거웠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를 집중 비판했다. 입장이 바뀌어 이제는 민주당이 가덕도 특별법에 예타 면제를 담았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표만 된다면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 세금이 어떻게 쓰이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국토부는 합리적 근거 자료를 토대로 조목조목 반대 의견을 냈다. "문제를 인지한 상황에서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해당하고, 성실 의무 위반 우려도 있다"고도 했다. 여당 의원은 "동네 하천 정비할 때도 이렇게 안 한다"고 했다. 여당도, 야당도, 공무원도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낙연 대표는 "국회가 법을 정하면 정부는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정부는 허수아비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해도 이런 식은 아니다.

이순신은 따뜻한 면모를 지녔지만 일은 엄격했다.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시한 내 수색을 마치지 못하면 꾸짖고 곤장을 쳤다. 심지어 도망간 병사의 목을 베어 매달았다. 만일 가덕도 앞바다에서 문 대통령이 특별법을 고집하는 이들을 꾸짖었다면 어땠을까. 또 이순신이 활을 쏘며 스스로를 가다듬듯 그런 시간은 갖고 있는지. "홀로 객창 아래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는 대목을 읽으며 부질없는 상상을 해 본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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