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경기여성연대 성희영
성희영 경기여성연대 사무국장
몇 년 전, 친구네 아이들,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제주에 사는 친구를 가이드 삼아 아이 넷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던 중 유명한 커피집이 있다고 해서 지나는 길에 들렀다. 영업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역시 유명한 곳이구나. 얼마나 커피가 맛있길래"하며 아이들과 함께 그 줄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곧 영업이 시작되고 주문을 하려고 들어갔다. 하지만 '노키즈존'이라며 아이들 입장을 거부당했다. '노키즈존이 있어?'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뭐라고 따지지도 못하고 어찌해야 하나 난감했다. 우린 불쾌한 기분으로 커피집을 나왔고, 바로 옆 아이들도 환영하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황당한 상황에 대한 '기분 나쁨'을 토로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친구를 잘 만나지도 못했고, 식당도 잘 가지 않았던 터라 노키즈존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친구에게서 제주에 그런 곳이 몇 집 있다는 얘길 들었다. 아이라는 이유로 문 앞에서 거부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겪었던 또 하나의 차별 경험은 장애인 친구와 함께였다. 함께 토론회를 가야 했기에 버스를 타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가려는 곳이 저상버스(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버스, 휠체어 타기에 좋은 버스다) 노선이 운영되는 곳이었다.

첫 번째 버스가 왔다. 그러나 우릴 보지 못했는지 그냥 지나쳐갔다. 다음 버스, 그다음 버스도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내리는 사람이 없는지 서지 않고 지나쳐 가버렸다. 토론회 시간은 다 되어가 결국 우린 걸어서 토론회장까지 갔다. 다행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어서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탑승을 거부당했다는 분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토론회 장소에 도착해서 버스회사에 전화 걸어 항의했지만,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없었다. 함께 한 친구는 그런 경험이 많았는지 개의치 않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장애인이라서, 여성이라서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았을지' 듣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날의 토론회는 장애 여성들의 차별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운 상황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일례로 한 장애여성은 대학에 가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대학에 가서 뭐하냐며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 부모님 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 장애인이 처한 현실이었다.

표준화된 규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은 마치 다른 존재로 여겨져 취업에 제한을 두거나,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모든 것에서 거부당하고 있다.

난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제한당한다. 범죄 우려가 있으니 난민을 거부하고, 아이들이 동성애에 물들지 모르니 성소수자를 거부한다.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니 장애인도 거부하고, 정상 가족이 아니니 거부한다. 그렇게 거부가 일상이 되는 시대를 경유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넘어서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꼭 필요하지만 국회에 멈춰져 있다. 2020년 발의됐으나 여전히 진전이 없다. 그 사이 혐오와 차별은 일상으로 파고들어 불이익을 당해도 개인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 하나 제정된다고 해서 당장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혐오하고 차별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고 문제의식을 높이는 최소한의 방편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배제당하지 않는 세상, 거부당하지 않는 세상. 너무도 당연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이 참으로 더디다. 더는 '나중에'라는 말로 누군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일상을 유예해서는 안 된다. 국회가 하루빨리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성희영 경기여성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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