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선호 대책위·민주노총, 산업 현장 '죽음의 악순환' 끊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만들어야

故 이선호 대책위 "책임자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해야" 목소리

민주노총 "기업살인 막기 위해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만들어야" 강조
입력 2021-05-14 21:40 수정 2021-06-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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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은 14일 오전 11시 평택시 안중 백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82명. 산재 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목표와 달리 지난 2019년보다 오히려 27명 늘었다. 반복된 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고로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재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처벌법)'도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법 제정 이후에도 산재사고는 반복됐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죽음의 악순환' 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故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필요"

"우리 아이는 일당 10만원을 벌기 위해 (일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4일 오전 11시 평택시 안중읍 금곡리의 안중 백병원 장례식장 앞.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고 이선호 씨가 숨진 지 23일째인 이날, 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가 땡볕 아래 마이크를 들었다. 

그는 "사업주가 인건비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우리 아이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FRC(개방형 컨테이너)의 날개를 접는 일에 동원됐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했다. 이어 "안전요원 2명까지도 필요 없고, 딱 한 명만 그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면 이번 사고는 일어날 수 없었던 사고"라고 말했다.

선호 씨가 일한 현장의 하루 일당은 10만원. 사업주는 고작 10만원을 아끼기 위해 안전을 도외시했고, 그 결과 선호 씨는 퇴근길에 오르지 못했다. 

이재훈 씨는 "선호가 우리 가족 곁을 떠난 순간,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 우리 가족은 이 고통을 평생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며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본다면, 사업주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전날(13일) 문재인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고 이선호 씨를 조문했다. 고 이선호 군 산재사망대책위(이하 대책위)는 "정부 여당과 문 대통령은 결자해지(結者解之) 심정으로 법과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유가족들이 이해할 수 있는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안전한 현장을 위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 ▲산재사망,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마련 및 개선 등을 요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도 기자회견문을 통해 "산재사망은 기업의 구조적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선호 님이 떠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세상이 이 죽음에 관심을 둔다. 모든 이들의 추모의 마음이 모이기 시작하자 정치인들이 움직인다"며 "이들이 와서 뱉은 말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 이들의 말대로만 되면 이제 우리나라는 산재로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날 평택항에서 발생한 고 이선호 씨 사망사고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지자체 합동 기구인 '평택항 사망사고 관계기관 합동 TF' 첫 회의를 열면서 철저한 수사로 사고 원인을 밝히고, 위법 사항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온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으로 입법 취지 살려야…"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1월 어렵게 국회 문턱을 넘었다. 고용부는 법 시행에 앞서 시행령 제정에 들어갔다. 시행령은 5월 입법 예고 후 7월 국무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원청과 경영책임자의 처벌과 공무원 처벌조항,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온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11시55분께 포천시 영북면의 한 채석장에서 50대 남성 1명과 60대 남성 1명이 기계에 끼여 숨졌다. 이들은 고장 난 바위 절단기인 '와이어 소(wire saw)'를 수리하러 기계 아래쪽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기계가 내려앉으면서 참변을 당했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장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었다. 포천 사고처럼 지난해 업무상 재해 사망자 882명 중 714명인 80.9%가 상시 근로자 5명 미만, 5~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소규모 사업장이 산재사고에 더욱 취약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5인 미만은 법 적용에서 아예 제외됐고, 5명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이후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포천 사고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려면 오는 2024년이 돼야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처벌 대상을 '경영책임자 등'으로 명시해 모호한 부분이 있고 공무원 처벌 조항도 빠졌다.

지난 6일 연천 차탄천에서 대전차장애물이 무너지면서 50대 가장이 숨졌다. 공사 현장 발주처인 연천군은 공사구간에 불과 6년 전 설치한 대전차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당연히 공사 현장에 투입된 숨진 노동자도 이 같은 사실을 알긴 어려웠다.

더욱이 관리·감독 또한 발주처인 연천군이 맡아 연천군의 관리 미숙에 대한 책임을 피하긴 어려운데, 경찰 조사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져도 연천군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민간 사업장보다 더욱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 공공기관이지만, 공무원이 가진 인·허가권이 중대재해의 원인이 됐다는 점은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공무원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이제 임박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빈틈없이 올바르게 제정해야 한다"며 "모법인 중대재해처벌법도 원청과 경영자책임자 처벌, 공무원 처벌조항,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걷어내고 인과관계 추정의 원칙이 포함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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