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

[윤인수 칼럼] 대한민국의 서사(敍事)가 사라진 대선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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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지금 우리를 분열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 홍보가들과 정치 선동자들, 정치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 밤 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진보의 미국, 보수의 미국은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습니다.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라틴계 미국도 아시아계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 있을 뿐입니다."


2004년 미연방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깜짝 등장한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념비적인 연설을 한다. '담대한 희망'으로 명명된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서사와 미국의 서사를 일치시킨다. "웃긴 이름을 가진 빼빼 마른 아이가 미국에 자신의 자리가 있음을 믿었던 그 희망"이 "(미국이라는) 이 나라의 기반"이라고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라는 아프리카 이름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유색인 상원의원으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된 자신의 서사가 미국이었기에 가능했음을 강조했다. 모든 미국인에게 미국의 가치를 일깨웠다. 


국민을 국가에 결속 시켜야 할 지도자들이
네거티브 오염·고발사주 의혹 등 분열 참담


회고록 '약속의 땅'에서 오바마는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승리를 사실상 확정지은 후의 심경을 이렇게 밝혀놓았다. "나는 젊고 검증되지 않은 신참을, 흑인일 뿐 아니라 이름 자체에서 낯선 인생사가 연상되는 사람을 믿어달라는 힘든 일을 미국 국민에게 요구했다. (중략)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회를 줬다. 정치 서커스의 소음과 잡담을 뚫고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나의 외침을 들었다. 내가 늘 최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내 안에 있는 최상의 것을 알아봐 주었다. 그것은 우리가 저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국민으로 묶여 있다고,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 뭉치면 더 나은 미래를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오바마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의 창조주가 부여한 이양할 수 없는 권리를 타고났다"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증거로 자신을 내세웠고, 2008년 미국인은 미국의 정신에 투철한 오바마가 미국을 위해 일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했다.

美 첫 흑인대통령에 선출 오바마 연설 반추
우리도 담대한 희망 메시지 외칠 후보 절실


오바마 이야기를 길게 한 건 국가와 국민과 대통령 후보들의 서사가 사라진 대한민국 대선 정국이 참담해서다. 현대 세계사에서 대한민국은 고통과 환희의 서사를 써내려 온 국가이다. 식민지에서 독립된 나라가 이념으로 갈라지고, 반쪽 남은 민주국가 영토에서 국력을 갖추기도 전에 공산주의 북한이 벌인 내전을 겪으면서 절망에 빠졌던 국가이다. 그런 나라를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국민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절망과 환호가 교차하는 서사의 중심엔 지도자들이 있었다. 공산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민주영토를 지켜낸 이승만이 있었고, 총으로 집권한 원죄를 경제도약으로 씻은 박정희가 있었다. 김영삼, 김대중은 민주화 투사의 이력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렸다. 잔인한 학살로 집권한 군사정권의 대통령 두 명을 법정에 세운 국가이고 국민이다.
 

그런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두 갈래 세 갈래로 분열됐다. 법과 정의는 '조국 백서'와 '조국 흑서'로 갈렸고, 태극기는 광장에서 우파와 좌파의 힘겨루기로 찢어졌다. 김원웅은 애국가를 부정하고, 6·25 전쟁영웅은 친일파 원죄 혐의로 현충원에서 모욕당한다. 진보의 대한민국과 보수의 대한민국이 다른 현실은 비참하다.

이번 대선은 이런 나라를 정상으로 복원시킬 지도자들의 경쟁이 돼야 한다. 하지만 소년공의 서사는 과반의 판세에도 불구하고 온갖 네거티브 공세에 오염됐다. 정의로운 검사의 서사는 개연성 없는 고발 사주 의혹에 흐려진다. 국민을 국가에 결속시킬 지도자들의 서사가 사라진 자리에, 무슨 짓이든 벌일 준비가 된 정상배들이 날마다 음모를 생산하고 있다.



정치서커스의 소음과 잡담을 뚫고 국가와 국민에게 담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외치는 후보가 절실하다. 국민은 '그 사람'을 고대하고 있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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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yo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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