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 자유로운 사람으로 나아가는 자전(自傳)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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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자신의 성장 서사를 고백적으로 담아내는 글을 '자전(自傳)'이라고 한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책에서 글쓴이는 때로 고백을 하고 때로 증언을 하고 때로 비전 설정을 하는 전지적 서술자로 등장하여 스스로를 사후적으로 구성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꼭 자전을 써보라고, 글쓰기의 궁극적 목표는 지상에서 유일한 자전을 남기는 것이라고 강조하곤 한다. 그 점에서 자전은 자신의 완성형을 꿈꾸는 이들에게 맞춤한 유일한 기획일지도 모른다.

작가나 시인이 강연할 때는 대체로 일인칭 화법이 채택된다. "제가 어렸을 때…"나 "제가 작가를 꿈꾸게 된 것은…" 혹은 "제가 영향을 입은 작가는…" 같은 일인칭 고백의 언어를 쉬이 들을 수 있다. 작가적 자의식이 자기 표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겠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나 잘난 맛'에 작가로 살아간다. 비평가는 그렇지 않다. 주로 삼인칭 화법을 쓴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문제적인 작가는 이광수입니다. 그는…"이라든지, "윤동주의 삶과 죽음은…" 같은 '그(그녀)'의 생애와 작품과 잔상에 관심이 많고 또 그들의 성취와 한계를 구성하여 '그것'을 평가하는 실존적 책무를 가진 까닭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남 잘난 맛'에 비평가로 살아간다. 그 점에서 창작이 일차 언어요 생성 언어라면 비평이란 이차 언어요 파생 언어인 셈이다. 


일인칭·삼인칭 수없이 교직하며
때론 극소수 이인칭도 등장시켜
'나'라는 유일성을 구성해 보자


비평가에게 '나'란 텍스트를 경유하여 도달하는 해석 지점이자 텍스트를 빌려 자신을 말하는 발화 지점이다.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비평가는 '그'를 관통하고 가로지르면서 '나'에 도착한다. 삼인칭을 빌려 자신을 말하는 일인칭 욕망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궁극적인 '나'에 가닿고자 하는 열망인 셈이다. 그래서 특정 작가나 작품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때 중요한 것은 '그'나 '그것'이 아니라 '그'나 '그것'을 통해 말을 건네는 비평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비평가는, 궁벽한 곳에 외따롭게 존재하면서 고고한 초월적 포즈를 취하거나 나르시시즘의 포로가 되어 자기 홍보에만 열중하지 않고, 타자들과 갈등하고 협업하며 살아 있는 '나'에 다다른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가 물어봤어?"라는 유행어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누가 묻지 않아도 부지런히 자기 이야기를 한다. 자기를 알아주면 (잠시) 고마워하고 흠을 들추면 가까운 사이라도 (오래도록) 돌아서는 존재들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완성된 그 무엇으로 인정받기를 안타까이 희망한다. 사실 "지금의 제가 가능했던 것은 그분 덕이다" 같은 겸양 어법조차 누군가에 대한 지극한 헌사라기보다는 여기까지 다다른 자신에 대한 자긍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삶을 완성된 것으로 귀납하려는 이러한 욕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가능케 했던 기원(origin)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 그분'이 자신의 존재론적 연속성을 형성해준 정신적 원적(原籍)이었다는 것이다. 이때 부모, 스승, 친구, 책, 어떤 장면 등이 소환되고 호명되고 숭배된다. 그런데 '그, 그분'이 안 계셨으면 '나'라는 존재는 전적으로 불가능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일부 변형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나'는 '그, 그분'이 아니었어도 작가가 되었을 것이며 배우자를 만났을 것이며 지금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가 상상하는 '기원'이란 자신의 삶을 기승전결로 완성하려는 욕망이 불러온 가상의 '제일원인'일지도 모른다.

빈축 사지않으려면 사실에 충실
스스로에 대한 기록 시도해 보자


이제 일인칭과 삼인칭을 수없이 교직하면서, 때로 극소수의 이인칭도 등장시키면서, 가상의 제일원인도 호출하면서, '나'라는 유일성을 구성해보자. 나르시시즘으로 빈축을 사지 않으려면 사실에 충실한 기억과 타자 존중의 마음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쓰다가 멈추더라도, 누구도 해주지 않을 스스로에 대한 기록을 한 번 시도해보자. 더욱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하면서 말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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