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향했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 상당수는 경기도에서 멈추었다. 서울에 일자리는 있어도 잠자리는 없었다. 그 시절 서울 경계의 경기도 땅에 우후죽순 들어선 공단이 이들의 북상 한계선이었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1987년)'은 서울 경계선 부천시 원미동에 터전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그악스러우면서 애잔한 일상을 그렸다.
지금의 경기도는 '난쏘공'과 '원미동 사람들' 시절의 경기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난쟁이 김불이의 식구들이 살았던 '낙원구 행복동'은 '천당 아래 분당'을 품은 대도시 성남으로 면모를 일신했고, 원미동 사람들도 이제는 이주 초기의 불안에서 벗어나 정착의 안정감을 찾았을 것이다. 수원 같은 도시는 한 세대를 지나는 동안 삼성이 초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자족도시의 면모를 갖췄고, 분당·일산·평촌·산본 등 1990년대 1기 신도시를 이어 판교, 광교, 동탄 등 2기 신도시가 들어서고, 이제 3기 신도시들이 도내 곳곳에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과 주변으로 가르는 고정관념은 여전히 강력하다. 경기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을 선망하고, 부동산 가격에 쫓겨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절망한다. 경기도민들의 서울 출퇴근 버스인 광역버스는 '빨간 버스'로 서울과 경기도를 분리하는 '기호'가 됐다. 최근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라는 대사가 경기도민의 가슴을 후벼 팠다. 마치 감춰왔던 자격지심을 들킨 듯한데, 엄연한 현실을 반영하니 씁쓸하다.
'빨간 버스'와 '계란 흰자'가 경기도 지방선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공약보다, 빨간 버스 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노른자 도시를 만드는 공약에 더 주목해야겠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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