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 'not today'

입력 2022-07-06 19:50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7-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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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콘텐츠부 국장
옛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아날로그 방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화나 유행은 옛것과 새것을 가르지 않으면서도 유독 사람을 신구(新舊)로 나누는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다.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돌아왔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꼰대'로 불리는 것도 익숙해져야 한다. 퇴역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2012년 개봉한 007시리즈의 '스카이폴'과 얼마 전 개봉한 '탑건 매버릭'이다. 영국 정보부 MI6 소속 베테랑 요원과 최고의 전투기 조종 실력을 갖춘 미 해군 장교의 이야기다.

스카이폴의 인상적인 장면은 영국 국민화가인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레메르의 마지막 항해'를 바라보는 노장 007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 신입 천재 엔지니어인 Q(벤위쇼)와의 만남이다.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서 당시로서는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증기선에 예인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전함 테레메르 모습은 처량하고 쓸쓸하다. 영국인의 자부심인 전함 테레메르는 1805년 영국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벌인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퇴역을 종용당하던 제임스 본드(전함 테레메르)가 신입인 Q(퇴역 전함을 예인하는 증기선)에게 "젊다고 다 창조적이진 않지"라고 말을 꺼내자 Q는 "잠옷 차림에 차 한잔 하며 노트북으로 요원님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기세등등하게 말한다.

007시리즈에 등장하는 첨단무기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잠수함기능을 갖추거나 투명하게 보이는 승용차, 레이저나 고성능 폭탄을 장착한 손목시계 등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무기들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스카이폴에서는 최첨단 무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본드는 구형 애스턴마틴을 탄다. 자동화기가 아닌 재래식 엽총으로 적을 상대한다. 영화 후반부 냉전시대를 상징했던 MI6 국장인 M이 총에 맞아 죽음으로써 한 시대가 지났음을 알린다. 제임스 본드는 어렵게 임무를 완수했지만, 세상은 변했고 자신의 역할이 다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을 신구로 나누는 시선은 여전히 불편
'스카이폴'·'탑건 매버릭' 퇴역 앞둔 주인공
숙련 경험으로 위기해결 노장에 존경 전해


35년 만에 속편으로 제작된 탑건 매버릭도 첨단기술에 밀려나는 신구의 갈등을 그렸다. 만년 대령, 전투기 테스트 조종사로 지내던 주인공인 매버릭(톰 크루즈)은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승진한 동료 아이스맨(발 킬머)의 부름으로 미 해군 최고의 공군 조종사 교육기관인 '탑건' 교관으로 부임한다. 첨단 전투기로 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구형 비행기 조종 교육을 맡은 그에게 직속상관인 체스터 케인(존 햄)은 이렇게 말한다. "끝은 정해져 있네, 매버릭. 자네 같은 파일럿들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어." 인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속도로 비행하는 인공지능 무인기가 대체되는 시점에 인간 조종사가 필요 없다는 상관의 말에 매버릭은 이렇게 답한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탑건 매버릭은 젊은 층뿐만 아니라 올드팬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조직에서 소외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노장의 모습이 올드팬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일까. 잠시나마 35년 전 젊었던 시절 감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을 담아 두 영화는 상황에 대한 통찰력, 숙련된 경험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노장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전한다. 영화는 언젠가는 천재 엔지니어와 인공지능이 전투를 대신하고 고도의 업무를 처리할 날이 올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아니다(not today)"라고 말하면서 사라져 가는 인간미에 대한 아쉬움을 전한다.

'인공지능' 인정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탑건 첫 편을 본 날이 스무 살이던 1987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였다. 35년이 흘러 속편을 볼 수 있어 설렜지만, 옆자리에 앉은 26살 딸에게 그때의 감동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은 아니다'라는 대사를 읊조리면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딸이 BTS(방탄소년단의) 'not today'를 들려주었다. 2017년, BTS가 세계 무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때 내놓은 노래다. "언젠가 꽃은 지겠지, 그때가 오늘은 아니지 (not today)." 그래 오늘은 아니야….

/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콘텐츠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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