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입력 2022-08-02 19:31
지면 아이콘 지면 2022-08-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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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제자백가 중 법가(法家)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의 국가 사상이었다. 그런데 법가를 대표하는 상앙(商앙)과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는 하나같이 비참하게 죽었다. 진효공을 도와 변방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진(秦)을 중원 최강의 군사 대국으로 키웠던 상앙은 효공 사후 정적들의 탄핵을 받아 자신이 제정한 형벌인 능지처참을 당했다. 법가 사상의 완성자로 진시황을 매료시켰던 한비자는 그를 시기한 이사의 모함으로 독살당했다. 한비자와 이사는 모두 순자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제자였다. 옛 친구를 제거한 후 승상이 되어 최고 권세를 누리던 이사도 시황제 사후에 간신 조고(趙高)의 배반으로 길거리에서 처형되고 만다.

진나라의 운명도 마찬가지, 진시황이 죽자 황제가 된 2세 호해는 전형적 혼군(昏君)이었다. 권력 암투와 내란이 격화되어 천하 통일 15년, 진시황 사후 3년 만에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진 제국 멸망의 도화선이 된 진광·오승의 반란도 기실 엄격한 형벌 제도가 한 원인이었으니 법치로 세운 나라가 결국 법치 과잉으로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진왕조의 멸망사를 통해 법가의 정치사상적 가능성과 한계를 볼 수 있다.

법가와 법가의 나라 진의 흑역사는 2천년 전의 중국의 일이라 치부할 수 있겠으나, 새 대통령과 각료들이 남발하는 '법치주의'는 예사롭지 않다. 행정이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다면 법치주의라면, 또 법치주의는 역사적으로는 절대주의 국가를 무너뜨리고 성립한 근대시민국가의 정치원리를 천명한다면, 무슨 이론이 있겠는가. 문제는 왜 지금 법치주의인가라는 질문이다. '법치'는 과거 치안본부나 국정원이 공안정국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혹은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예고였다. 법률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횡포였다.



법 앞에 평등은 당위론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믿는다.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은 그만큼 깊다. 약자들은 법으로 얽으면 걸려들지 않을 수 없지만 법의 허점을 아는 기술자들에게 법은 그저 성긴 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재벌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나 전관예우 같은 법률가 집단의 부조리가 다 사라졌다면 또 모르겠다.  


법과 원칙은 사회적 약자들 위한 '비빌 언덕'
법 절대화한다면 사법만능주의 늪에 빠져
경제·국제정세 위기극복 컨트롤타워 '흔들'
국론분열 법치 아닌 통합의 정치 회복해야


법과 원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비인격적 처우를 견디다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차별의 그물에 갇힌 여성과 소수자들이 불완전한 법이나마 지켜야 한다고 호소할 때 '비빌 언덕'이 법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천명하는 법치는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위협처럼 들릴 뿐이다.

사회적 약속의 산물인 법을 절대화한다면 사법 만능주의의 늪에 빠지게 된다. 법은 이해 당사자들의 타협의 산물로 불완전하며 과도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졸속 입법도 있고 낡은 법률도 부지기수다. 헌법도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매사를 법률로 환원하여 행정심판이나 헌법재판소만 쳐다본다면 정치와 행정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새정부는 한국 정치의 심각한 자기부정을 증폭하고 있는 셈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미·중 대결에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위기와 같은 재앙적 위기가 덮쳐오고 있는데 위기극복의 컨트롤 타워는 출범 80여일 만에 지지율이 붕괴하고 집권당은 권력 투쟁으로 4분5열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치를 빌미로 법무부와 해수부, 국방부와 통일부까지 여전히 전임 정부의 정책적 선택을 들추어 쟁점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의 평지풍파는 국민 기만극으로 보이며 정치적 무능의 부재증명일 뿐이며, 안보 자해까지 우려되는 판국이다. 지금은 국론 분열을 부르는 법치가 아니라 통합의 정치를 회복해야 할 때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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