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사망사고

[비극의 재구성] SPC 사망사고 '예고된 인재人災' 피할 길 없는 노동자들

입력 2022-10-23 14:22 수정 2022-11-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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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6시 평택역 광장 앞에서 SPC 청년 노동자 추모 문화제가 진행됐다. 사진은 SPC 규탄 피켓을 들고 있는 강규형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 2022.10.21 /김산 기자 mountain@kyeongin.com
10월 7일 오후 3시 예고된 비극… 10월 15일 오전 6시 20분 비극이 시작됐다
비명 소리에 황급히 찾아간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23세 여성노동자 이지연(가명)씨가 끼여 있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말을 자주 한 이씨는 동료도 안전 관리자도 CCTV도 없던 구별된 공간에서 사고를 당했다. 15㎏ 소스 용기를 옮기던 이씨를 동료들이 발견했을 땐 이미 숨진 뒤였다고 한다.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토요일 아침, 12시간 밤샘 근무의 마지막 1시간을 앞둔 시각이었다. 그렇게 10월 15일 오전 6시 20분 비극이 발생했다.

#10월 15일 오전 6시 20분 
23세 노동자 밤샘근무 1시간 앞둔 시각
15kg 소스용기 옮기다가 기계 끼임 발생
어머니와 남동생의 생계를 책임졌던 씩씩한 이씨였다. 빵 만들기를 좋아해 고등학교에서도 베이커리과를 전공한 이씨는 졸업 후 곧장 일터로 나섰다. 비정규직으로 SPC파리바게뜨 매장에서도 일했던 이씨는 2년 전인 2020년 SPC 계열사 SPL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그토록 좋아하던 제빵 일을 계속 할 수 있어 기뻐했다고 전해졌다. 극한의 작업량에 시달리며 회사로부터 주 64시간씩 일하는 '특별연장근로'를 요구받아도 이씨는 마다하지 않고 먼저 나서곤 했었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해당 '냉장샌드위치' 라인 당일저녁 가동
노동자 항의로 다음날 부랴부랴 휴가 줘
수습 도운 '고구마케이크' 18일 돼서야 휴가
그런 이씨가 숨진 SPL의 '냉장샌드위치' 생산 라인은 사고 당일 저녁부터 다시 가동됐다. 동료들은 흰 천 하나로 가려진 이씨의 흔적을 곁에 두고 다시금 12시간 작업에 내몰렸다. 애통한 마음을 못 숨긴 노동자들의 항의로 SPL은 16일 냉장샌드위치 노동자들에게 부랴부랴 휴가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작업장을 사실상 공유하고 사고현장 수습까지 도왔던 옆 라인 '고구마케이크' 노동자 수십 명은 대상에서 빗겨가, 사고 3일이 지난 18일 오후가 되어서야 휴가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SPL는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의 배합기 작업 중단 조치로 생산에 차질을 빚은 SPL은 사고 이틀 뒤인 17일 배합 노동자 9명을 대구의 또 다른 SPC계열사 제빵공장으로 보내 배합 작업을 지시했다. 파견된 노동자들은 역시 주·야간 12시간 교대 근무를 지켜 가며 사고 기계와 동일한 배합기를 작동시켰다. SPL은 며칠을 평택에서 대구까지 물자를 운반하며 작업량을 유지했다고 한다.

#10월 7일 기계에 20분동안 손 끼여있던 노동자 
피해자 둔채 관련자 집합시켜 30분간 책임물어
'비정규직' 이유로 병원 알아서 가라 방치 사실
한편 사망사고 불과 일주일 전에도 유사한 끼임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씨의 참변이 예고된 '인재'라는 점이 확인됐다. 지난 7일 한 비정규직 파견 근로자가 기계에 손이 20분가량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관리자는 응급조치도 받지 못한 피해자를 두고 관련자들을 집합시켜 30분가량 책임을 묻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지정 병원으로 알아서 가라는 등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 빈소로 자사 파리바게뜨 빵을 보낸 사실까지 알려지고, 사고 당일 제조된 소스로 만든 샌드위치 4만여개가 전국에 출고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불매운동 등 SPC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대통령의 입이 두 번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다음 날인 16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구조적 문제와 정확한 사고 경위 파악을 지시했다. 이로써 20대 여성 노동자의 비극을 밝혀낼 수사의 칼날은 SPC를 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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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앞에서 진행된 SPL 평택공장 소스 배합기 끼임사고로 사망한 여성 청년 노동자 추모 행사에서 시민들이 추모글을 게시하고 있다. 2022.10.20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10월 15일 이후… 두 차례 고개 숙인 SPC와 가라앉지 않는 비판 여론

대통령의 지시에 SPC를 향한 관련 수사도 급물살을 탄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일 경찰과 함께 평택 SPL 본사를 압수수색했고 작업 절차와 안전 조치 등에 관한 서류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은 '안전장치·교육' 여부와 '2인1조' 근무체계다. 노동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18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꾸리고 사고가 발생한 공장 내 자동방호장치(인터록) 설치 및 안전교육 시행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지난 17일 SPL이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는데도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아왔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10월 20일 고용노동부·경찰 SPL 본사 압수수색 

'안전장치·교육' '2인1조 근무체계' 쟁점
인터록 등 산안법 위반사례 여부 조사

다만 2인1조 근무 여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명시된 내용이 아니어서 회사 내부 지침 등을 함께 파악 중이다. 회사 내부 지침상 2인1조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면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인터록 외에도 산안법 위반 사례가 추가로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며 "중처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도 보강 수사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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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앞에서 SPL 평택공장 소스 배합기 끼임사고로 사망한 여성 청년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2.10.20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10월 15일 오전 6시 20분, 그날 이후 현재 

17일 허영인 회장 질의응답 없는 대국민 사과
미흡한 후속대처로… 불매운동 불번지듯 확장세
24일 강동석 대표 국감 종합증인 채택 예정
25일 '파리바게뜨 노동자…' 공동행동 기자간담회

이 사고로 숨진 20대 노동자의 유족 측은 지난 21일 노동부와 경찰에 고소장을 내기도 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오빛나라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SPL 주식회사와 대표이사,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노동부 경기지청에 고소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평택경찰서에 고소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이 사고와 관련해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허 회장은 사고 발생 이틀 만인 지난 17일 본인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해 애도의 뜻을 표했는데, 사태가 가라앉질 않으면서 결국 21일 서울 SPC그룹 본사 건물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허 회장은 이날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총 1천억원을 투자해 안전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질의응답이 없는 일방적인 사과였다. SPC 측은 사고 수사 중이기에 별도의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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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고 있다. 2022.10.21 /연합뉴스

미흡한 후속 대처로 온·오프라인 상에서 SPC에 대한 비판 여론은 가라앉질 않는 모양새다. 사고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작된 SPC 불매운동은 대학가로 확산해 캠퍼스에 대자보가 부착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19일 불매운동으로 인한 자영업자 피해를 호소했던 SPC 파리바게뜨의 가맹점주들도 22일 재차 입장문을 내고 "참으로 애석하고 참담하다"며 "회사에 철저한 원인 분석과 책임자 처벌, 안전 경영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SPC를 향한 압박은 앞으로도 거세질 전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강동석 SPL대표를 24일 국정감사 종합증인으로 채택해 사건 경위를 파악할 계획이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은 2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산재사망 사고원인과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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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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