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벗어나기 힘든 쪽방의 굴레, 빈곤 비즈니스로 이어졌다2022년은 다사다난했다. 중앙과 지방 권력이 대부분 바뀌었고 경제는 바람 잘 날 없이 요동쳤다. 사회 곳곳에서도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내내 혼란스러웠다.격동의 시기, 변화에 대한 기대만큼 불안과 한숨도 컸던 2022년을 뒤로 하고 2023년이 밝았다. 내내 불던 폭풍이 잦아들고 평온과 안정 속 새로운 희망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분야와 공간을 막론하고 높아지고 있다.경인일보는 새해 각 분야 전망과 함께 더 나은 경기도·인천시를 위한 과제 등을 두루 제시한다.
→ 편집자 주
한국 사회 주거 취약계층의 천태만상은 쪽방 한 칸 한 칸에 담겨 있다. 지난 9월 수원시 남수동의 한 쪽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곳에 거주하던 50대 남성이 사망했다. 사고 수습이 이뤄진 지 불과 2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난 11월, 다시 찾은 쪽방은 새로운 세입자를 맞으려 단장에 한창이었다.
불에 타 검게 그을린 9㎡ 남짓한 공간이지만, 입주 문의는 꾸준히 오는 상황이었다. 이웃의 죽음에도 쪽방 거주민들은 이곳을 떠나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도시 주변에서 보증금 없이 25만원 정도 월세만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공공의 도움을 받아 열악한 쪽방을 벗어나려 했지만 좌절된 경우도 있다. 수원 평동의 한 주택은 모양새는 쪽방과 다름없으나 형식상 쪽방에 부합하지 않았다. 환기가 안 되는 좁은 공간, 외부에 있는 수세식 화장실 등 취약한 주거 환경이었다. 하지만 지하에 있지도 않고, 방이 여러 개로 쪼개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쪽방, 반지하 등 비주택 거주민의 공공임대 주택으로 이주를 돕는 '주거 상향 지원 사업' 선정에서 비껴갔다.
"주거급여 지원서 나아가 어떤 형태로 사는지 고려를”
벗어나기 힘든 쪽방의 굴레 탓에 취약계층을 상대로 한 '빈곤 비즈니스'는 성행하고 있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보편적인 주거권에 대한 인식 부족, 적극적인 행정의 역할 부재 등이 한데 맞물려 있다.
다행인 점은 평동의 한 주택은 최근 형식상 쪽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알려지자 LH에서 직접 방문해 주거 상향 사업 신청을 도왔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단순히 주거 급여를 지원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어떤 형태에 사는지까지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며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쪽방'이라는 용어가 모호한 점도 한계다.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해당 개념을 포괄적으로 담고, 실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은 적극적으로 용어를 해석해 사각지대에 머문 주거 취약계층을 발굴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동등하게 찾아온 천재지변에 차등적이었던 폭우의 고통
쪽방 바로 아래층에서는 반지하 거주민들의 고통이 이어진다. 침수에 약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등 반지하는 재난에 취약한 거주지이나, 지난 여름 폭우가 닥치기 전까지는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를 들고 원룸 대신 택할 수 있는, '가성비'를 충족하는 선택지였다.
재난상황에서 고통은 반지하층 거주민들에게 가중됐다. 지난 폭우로 발생한 수재민들은 나이도, 성별도, 가구 형태도 저마다 달랐지만 대부분 반지하에 사는 취약계층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지상층의 주택을 구하지 못해 폭우로 침수됐던 반지하층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재난에 취약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반지하층을 한순간에 없앨 수는 없다. 고육지책이기는 하나, 쪽방과 마찬가지로 저렴한 주거 비용으로 취약계층이 도심과 맞닿은 곳에 터전을 꾸릴 방편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전을 돕되, 반지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을 도울 현실적인 해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현재 국토교통부와 각 지자체에서는 '주거 상향 지원 사업'과 재난지원금, 배수로 개선 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공공임대 부족에도 '기금' 감축… "매입임대 늘려야”
문제는 반지하층 거주민이 새로 옮겨갈 도심 내 공공 임대주택 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이마저도 추후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의 2023년도 예산안을 보면, 주거 급여지원 단가를 상향하고 반지하와 쪽방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게 보증금 무이자 대출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 명시했다.
하지만 정작 입주 대기순위가 길게 이어지며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도시의 공공임대주택을 어떻게 마련할지 구체적인 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되레 올해 국민임대와 공공임대 기금은 각각 3천1억원, 1천180억원으로 2022년 대비 평균 54%씩 감축될 예정이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주거급여 상향을 가구 하나당으로 따지면 3천원 가량이 오르는 것이라 미봉책에 가깝다. 해결을 위해서는 공공임대 주택을 늘려야 하는데, 반대로 관련 예산이 삭감돼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아파트형 임대주택 외에 이미 지어진 주택을 매입하는 매입임대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부동산 가격이 차츰 하락하면서 오히려 주택도시기금으로 매입임대를 늘리기 알맞은 시기”라고 짚었다.
■ 고립될 수밖에 없던 수원 세모녀
주거급여, 기초생활수급비 등 모든 공적 지원금을 자발적으로 거부한 채 사각지대에 머물던 이들이 있다. 지난 8월 수원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는 세 모녀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개선됐으나 사각지대에 있던 수원 세 모녀는 발견되지 못했다.
이들은 수원시에서 거주하고 있었지만, 채권자의 빚 독촉을 피해 주민등록상 주거지를 화성시로 등록한 탓이다.
지난 2014년 정부는 공과금을 3개월 체납하면 관련 정보가 관할 구청에 통보되도록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선한 바 있다. 공과금 납부 여부를 추적해 사각지대에 머물 수 있는 취약계층을 발견해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수원 세 모녀는 건강보험료를 16개월 체납했음에도 주거지와 실거주지가 달라 공공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2021년 1인당 113.4건 조사… 복지 공무원 증원 필요
이에 정부와 경기도 등 지자체는 지역사회를 활용해 위기 가구를 발굴하겠다는 개선책을 내놨다.
수원 세 모녀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다르더라도 공과금뿐만 아니라 질병, 채무, 고용관련 정보까지 활용해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취약계층 가구 주변 이웃에게 기대 이들의 어려움을 함께 살피게끔 '인적안전망'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실무를 담당할 사회복지공무원을 증원하는 방안은 빠져 있었다.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의 공무원 1인당 위기 가구 조사 건수는 지난 2018년 45.2건에서 2021년 113.4건으로 대폭 늘었다.
결국 부족한 복지인력을 지역사회 인적자원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현재 명예사회복지공무원 등은 생업이 따로 있기에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공적인 책임과 권한을 갖춘 복지 전담 공무원 증원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인적 안전망을 보다 촘촘히 구축하기 위해 위기 가구 발굴에 힘쓴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할 필요도 있다. 최근 수원시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의수당을 1만원에서 3만원으로 증액해 달라고 경기도에 요청하기도 했다. 도는 성과를 보여준 명예사회복지공무원에게 포상을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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