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유골·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을 배우자와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하는 경우, 그의 영정이나 위패를 묘에 안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이달 중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재형 선생의 묘는 애초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조성됐다가 묘지 조성 작업과 유족 연금을 받아 온 유족이 '가짜'로 드러나면서 현재 묘가 없는 상황이다. 최 선생의 묘는 2000년대 초반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족들은 최재형 선생의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위패로만 모시고 있는데, 현행법상 유골·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은 영정이나 위패를 봉안시설에만 안치할 수 있고 묘를 조성할 순 없다. 최 선생 유족들은 그동안 묘 복원을 희망해왔다.
보훈처, 국립묘지법 개정안 의결
유해 찾을길 없어 유족 위패만 모셔
배우자 유골과 합장할 수 있게 돼
4대손 인천 지역사회와 '인연' 깊어
이번에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면 키르기스스탄에 묻힌 최재형 선생의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골을 한국으로 옮겨 최 선생 위패와 함께 서울현충원 묘역에 안장할 수 있게 된다. 유해 찾을길 없어 유족 위패만 모셔
배우자 유골과 합장할 수 있게 돼
4대손 인천 지역사회와 '인연' 깊어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권 침탈 시기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일제의 방해 또는 은폐로 유골·시신을 찾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며 "예우 강화 차원에서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을 묘에도 안장할 수 있도록 유족들의 안장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경원 출신인 최재형 선생은 유년기 연해주에 정착해 사업가로 성공한 러시아 한인 사회 지도자이자 교육사업가였다. 그는 1908년 안중근(1879~1910) 등과 의병본부를 설치하고 군자금을 지원했는데, 이듬해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처단하러 갈 때까지 최재형 선생 집에 머물며 사격 연습을 했다고 전해진다.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해 연구를 통해 1920년 4월 최재형 선생이 독립운동단체 '독립단' 단장으로 활동 중 일본군으로부터 조사받다가 탈출을 기도해 순국한 사실을 일본 외무성 기록으로 처음 확인하기도 했다. 최재형 선생의 장남 최 코루리가 1922년 11월 고려혁명군 특별사령관을 맡은 사실도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가 밝혀냈다.
수십만명의 시베리아 이주 동포 사이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바친 최재형 선생은 '대은인'이라 불렸다. 그러나 선생의 후손들은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모스크바나 중앙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며 어려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최재형 선생은 인천과 인연이 깊다. 최 선생의 4대손 최일리야씨는 인천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인천대에서 공부하다 지난해 인천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인천시는 2021년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수술이 필요하게 된 최일리야씨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수술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자 지역 의료기관과 함께 수술비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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