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2024년 여름호 발간 “북한의 두 국가 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2024-05-30 12:07 수정 2024-05-30 13:05

북한의 ‘두 국가론’ 선언 맥락·전망과 대안 특집

글로벌 문화현상 ‘BL’ 만화 다룬 비평 3편 수록

지난 4월 별세한 故 홍세화 선생 추모 글과 시

‘황해문화’ 2024년 여름호 표지.

‘황해문화’ 2024년 여름호 표지.

■ 황해문화 2024년 여름호(통권 123호)┃새얼문화재단 펴냄. 400쪽. 9천원

문제는 ‘두 국가’가 아니라 ‘적대와 충돌’이다. 황해문화 2024년 여름호(통권 123호)에서 하남석(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편집위원이 쓴 권두언 제목이다.

황해문화 제123호는 ‘북한의 두 국가론 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특집을 기획했다. 이번 호 특집에서 북한의 ‘두 국가론’ 선언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나온 것인지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의 긴 흐름 속에서 파악해보고, 평화를 향한 우리의 대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 살폈다. 이번 호 권두언을 요약·정리한다.

2018년 4월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오후 6시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을 읽어본 이들은 이제야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전쟁 없는 한반도를 물려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 전환과 결정이 지난 촛불항쟁으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흐름 속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전의 어떠한 남북정상회담과 비교하더라도 보다 광범위한 남측 민중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런 변화는 역진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북도 마찬가지였다. 판문점 회담 1주일 전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것이며 동시에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고, “조선 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2024년 현재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월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한민국’이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임을 헌법에 반영하고, 북한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피할 생각 또한 없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두 국가론’ 선언의 맥락

황해문화 제123호 특집에선 지난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남북 관계사 30년’을 통해 지난 30여년 간 남북 관계의 변천을 정리한다. 또 현재 직면한 위기를 해석할 수 있는 여러 요인을 제기한다.

이 글에 따르면 남한의 진보 정부는 북한을 인정하고 남북 관계의 현안을 해결하고자 했으며, 통일의 결과 이전에 그 과정을 중시해 실질적 의미에서 교류하고 평화로운 상태인 ‘사실상의 통일’을 강조했다. 반면 대북 강경 정책을 추진하는 보수 정부는 흡수 통일을 추구하며 ‘결과로서의 통일’을 중시했다. 북한 역시 시간이 흐르며 통일과 남측에 대한 담론과 접근이 변화해왔다.

이 글이 주목한 것은 북한의 이중적 민족 개념이다. 김연철 전 장관은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우리 민족끼리’가 등장하지만, 대체로 북한 ‘인민’의 자부심을 동원하기 위한 ‘조선 민족 제일주의’를 강조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상황 변화를 일정하게 수용하되 통일이라는 미래의 문을 절대 닫아선 안 되며, 대화 노력을 멈춰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핵심은 두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전 장관은 새로운 변화를 반영한 통일 담론을 만들어나가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고, 공통점을 찾아나가는 국민적 합의를 만드는 노력이라고 역설했다.

박희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왜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는가: 북한 내부의 변화와 위기로 살펴본 두 국가론’에서 2012년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 내부의 경제 상황과 정치사회적 변화를 세세하게 추적했다. 북한의 체제 생존 열망과 번영의 목마름이 어떻게 좌절되고 굴절되면서 ‘두 국가론’이 등장했는지 살핀다.

러시아 전문가인 성원용 인천대 교수는 ‘북러 관계 변화의 동인과 북중러 삼각 체제 전망’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좀 더 냉철하게 다각도로 분석한다. 성 교수는 북중러 삼국 관계는 최근 국제 정세로 인해 더욱 밀착하고 있지만, 이들 나라가 뜻을 완전히 같이하는 하나의 결속체로서 삼각 체제를 성립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탈북한의 상상력: 다시, 더 좋은 평화의 시작을 위하여’에서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몇 가지 제안을 던진다. 정 대표는 우선 북한이 2023년 7월부터 남측을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고 부르면서 자신들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조선’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도 이를 수용해 이제는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불러주자고 제안한다. 이는 완전히 두 국가로 갈라서자는 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 상호 인정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서로의 수용성을 높여보자는 새로운 제안이다.

#극단 치닫는 세상 속 공존 모색

황해문화 제123호에선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대한 평가, ‘국제 여성의 날’의 의미, 지난 4월18일 별세한 홍세화(1947~2024) 선생에 대한 추모의 글, ‘BL’에 관한 문화비평을 포함한 여러 비평과 서평 등을 실었다.

정치학자인 이광일 황해문화 편집위원은 ‘돌고 돌아 다다른 길, 또 그 글’을 통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한국 정당들의 문제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더는 아래로부터 민중의 뜻을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를 비판했다. 정은희 활동가의 ‘그래서 우리는 국제 여성의 날, 여성파업에 돌입했다’에선 국제 여성의 날에 있던 ‘3·8 여성파업대회’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짚었다.

문화비평에선 만화 특집으로 남성 동성애를 그린 서사 장르로서 꽤 오랜 역사를 가진 BL(Boy’s Love)을 다뤘다. 이미 글로벌 차원의 문화현상인 BL에 관한 3편의 글을 통해 이 장르가 매체의 발달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장르가 가진 성정치적 성격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살필 기회를 마련했다.

고(故) 홍세화 선생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으로 프랑스에 망명한 ‘파리의 택시 운전사’로, 귀국 이후 ‘한겨레’ 기획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 ‘말과 활’ 발행인 등 언론인,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항상 연대하고 실천한 정치인이자 활동가이기도 했다. 이번 호에선 박점규의 글 ‘소박한 자유인 홍세화의 꿈’과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이성과 사랑, 그 고귀함에 대하여’로 선생이 떠나며 남긴 ‘앎과 삶의 일치’란 화두를 새겨본다.

황해문화 제123호는 6월1일 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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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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