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 옆, 기후괴담
[지금 당신 옆, 기후괴담·(3)]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공포’… 평택 세교지하차도 침수의 날
세계 기후변화 연구하는 전문기업 ‘XDI’
2050년 이상기후·재난 위험지역 보고서
전세계 2639곳 대상, 경기도 66위 기록
대규모 제조업 집중… 홍수 가능성 높아
호주 ‘크로스디펜던시이니셔티브(XDI)’는 세계 기후변화를 연구하고 그로 인한 위험도를 분석하는 전문기업이다. 올해 3월, XDI는 2050년, 기후변화로 인해 이상기후와 물리적 재난이 발생할 위험이 큰 지역을 분석해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경기도’가 66위를 기록했다. 전세계 2천639곳을 대상으로 홍수·폭염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지역 건물 등에 미치는 경제적 손실 정도 등을 수치화해 순위를 매긴 것인데, 세계 유수의 위험지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특히 한국에선 100위권 안에 들어간 ‘유일’한 지역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상기후로 물리적 위험을 겪을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꼽힌 데 대해 취재팀은 XDI에 서면질의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XDI의 이번 분석의 핵심은 기후변화로 인해 예측이 불가능할 만큼 극한 기상이 계속될 때 주택, 다리, 항구, 공항, 고층건물, 공장 등 물리적 구조물이 받을 수 있는 피해 위험도를 측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지역의 기상 및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고 건축환경 등 공학적 원형을 결합해 분석했다고 밝혔다.
경기도가 상위 100대 기후 위험도시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XDI는 “경기도의 건축환경 인프라는 홍수로 인한 피해 위험이 매우 높은데, 이는 지구 온난화와 함께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기도는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도시화의 정도, 인구밀도 등이 더 높은 서울보다 경기도가 더 위험하다고 분석된 이유에 대해선 “인구나 도시밀도는 분석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단순히 극한 기상으로 인해 건축물의 피해 가능성을 현재와 미래에 걸쳐 살펴보는 것이다. 서울은 수도지만 지리적으로 (경기도보다) 작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경기도는 대규모 제조업이 집중돼있고 해안선과 여러개의 주요 강이 있어 홍수가 일어날 요인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결국 경기도가 지닌 선천적·후천적 환경요인과 예측불가능한 이상기후가 결합하면 물리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다. 이는 장차 경기도의 경제적 투자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XDI는 “투자자들은 극한 기상으로 인해 물질적 위험이 증가하는 점을 매우 유의해서 보고 있고, 이러한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행되고 있는지도 관심이 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영환 숙명여자대학교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기업은 자산이 기후 현상에 어떤 물리적인 영향을 받을지, 그 영향이 어떤 경제적 피해로 나타날지를 고려해서 향후 투자 방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의 이번 여름은 말 그대로 ‘극한 기후’였다. 순식간에 쏟아진 비에 평택 세교지하차도가 침수되고 파주 등 경기북부는 물바다가 돼버렸다. 한쪽에선 비가 쏟아지는데, 다른 한쪽에선 폭염으로 허덕였다. ‘예측 불가능’한 경기도 이상기후를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결과는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날의 평택 세교지하차도, 아찔했던 그 순간
평택 세교지하차도 침수 17시간 전
7월 17일 오후 5시. 퇴근시간이 가까워졌지만 평택시청 도로정비팀 조병훈 주무관은 기상청 날씨예보에 바짝 예민해져 있었다. 기상청은 18일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경기남부 지역에 호우 예비특보를 발효했다. 매년 장마철마다 뜨는 예비특보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요즘 장마는 예전의 장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이미 전날인 16일부터 국지성 폭우로 파주 등 경기북부가 초토화됐다. 조 주무관을 비롯해 임영훈 팀장 등 도로정비팀 4명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언제든 비상근무로 전환할 수 있게. 이때만 해도 매뉴얼대로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평택 세교지하차도 침수 7시간 30분 전
7월 18일 오전 2시30분. 기상청은 안산과 시흥, 평택, 화성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다. 이 시각, 평택시 시간당 최고 강수량은 0.5mm로 관측됐다. 기상청 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도로정비팀 전원이 비상대기 근무로 전환했다.
평택시에는 15개 지하차도가 있다. 최희곤 주무관은 사무실 옆 작은 방에서 시청에서 관리하는 7개 지하차도 내부 상황을 비추는 CCTV와 배수 펌프 상태를 나타내는 시스템부터 점검했다. 모든 것은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세교 지하차도엔 배수 펌프가 4개 있지만 2개는 평시에 사용되고, 다른 2개는 예비 펌프로 가용되는데, 당시 펌프 2개가 정상 작동 중이었다.
임영훈 팀장은 CCTV에서 물이 튀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국토교통부 지침상 지하차도 바닥으로부터 15cm 이상 물이 차오르면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 당시 육안으로 볼 때 물이 튀는 정도는 심 각해보이지 않았다.
“15cm 가량 물이 고였을 때는 차가 물을 지나칠 때 양 옆이 갈매기 날개 모양처럼 확 튀어야 하거든요. 당시 지켜봤을 때 그렇게 많이 튀지 않았어요”
임 팀장은 당장 현장에 나가 예찰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평택 세교지하차도 침수 3시간 30분 전
7월 18일 오전 6시 30분. 새벽 5시까지 시간당 1mm 이내로 오던 비는 6시를 넘기자 평택 일부 지역에서 시간당 30mm가 쏟아졌다. 기상청은 안산, 시흥, 수원, 오산, 평택, 군포에 발령된 호우주의보를 호우경보로 상향했다. 이때 평택은 시간당 최고 강수량이 35mm였다. 이정도는 매년 장마철에 충분히 발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세교지하차도가 있는 원평동과 통복동 인근엔 타 지역보다 낮은 강수량인 시간당 10mm 내외의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는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변하고 있었다.
평택 세교지하차도 침수 1시간 30분 전
7월 18일 오전 8시 30분. 조병훈 주무관은 8시가 넘어서부터 비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같은 시각 임영훈 팀장 역시 뭔가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예감했다. 임 팀장은 팀원들에게 지하차도 CCTV와 배수 펌프 등 상황을 예의주시하란 말을 남긴 채 지하차도로 출동했다. 이때가 평택시 시간당 최고 강수량은 60mm였다.
CCTV 등을 모니터링하던 최희곤 주무관은 펌프 2개가 작동하던 세교지하차도가 예비펌프 2개까지, 전체가 가동 중인 상황을 포착했다. 현장에 나간 임 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외부 용역업체에도 지하차도 인근 대기를 부탁했다.
평택 세교지하차도 침수 발생 25분 전
7월 18일 오전 9시 35분. 임영훈 팀장은 폭우를 뚫고 평택시내 지하차도들을 둘러보았다. 세교지하차도 외에도 은평노을 지하차도, 비전지하차도 등 바닥으로부터 15cm 가량 물이 차오른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왔다. 이때 평택시 시간당 최고 강수량은 88.5mm. 임 팀장은 불현듯 지난해 7월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떠올랐다. 곧바로 도로정비팀에 전화했다.
“당장 용역업체 우회 표시 사인카가 없으면 평택시청에 사이렌 달린 차량을 가지고서라도 일단 막으라고 지시했죠. 차량이 없다면 일반 차량을 대각선으로 막고 못들어가게 손 들고라도 서있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임 팀장은 긴급하게 차량 통제를 지시하면서, 지하차도 통행 전면 통제를 결정했다.
이때부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조병훈 주무관은 시청이 직접 관리하는 평택 남부권 지하차도 중 5개소(비전, 은실, 원평노을, 신대, 세교)를 통제했다. 송탄 출장소가 관리하는 북부권 지하차도 3개소(권성, 서탄, 서정) 역시 통제됐다.
한편 예비펌프까지 4개가 계속 돌고 있다는 세교지하차도의 상황을 최희곤 주무관에게 전달받은 임영훈 팀장은 다급하게 세교로 향했다. 세교지하차도는 도심에 있는 다른 지하차도들과 달리 인근에 논경지가 있기에 범람 위험이 충분했다.
평택 세교지하차도 침수 발생
7월 18일 오전 10시. “눈을 의심했다”
세교지하차도에 도착하자마자 임영훈 팀장은 말문이 막혔다. 논밭과 논밭 사이에 커다란 강이 보였다. 20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다. 강이라고 표현한, 큰 물 아래 높이 760m, 폭 19m의 세교 지하차도가 잠겨 아예 자취를 감췄다. 세교지하차도가 침수됐다.
당시 도일천은 범람하지 않았다. 도일천의 수위를 보고 범람을 우려한 행정 당국에서 도일천으로 유입되는 수문을 닫았다. 그러자 인근 농경지와 배수로에 급속도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농경지에 쌓인 물은 기어이 도로로 넘쳤고 세교지하차도까지 덮친 것이다.
임 팀장은 그 날만 회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린다.
“비가 다 내린 다음에야 시간당 얼마가 왔느니, 이런 것을 해야했다, 말할 수 있지. 당시에는 비가 어디에 얼마만큼, 언제까지 올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물이 차는 게 보여서 혹시 하는 마음에 미리 차단한 것이지, 농경지가 범람해서 완전 침수될 거라곤 예상할 수 없죠. 나중에 결과를 보고 그때 차단했던 게 맞았던 선택이었다 하는거지, 사실 전혀 예측이 안되는 거잖아요.”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