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빠진 청소년
계좌 동결 '독버섯 사이트' 급소 잡는다 [온라인 도박에 빠진 청소년·(下)]
불법 도박과의 전쟁 시작됐다
불법 OTT 사이트 '카지노·슬롯' 광고 가득
10곳중 절반이 미성년자 이용 불가 공지 떠
'도박없는학교'의 클린계좌, 정치권도 동참
사감위 운영 신고센터서 연간 수만건 적발
불법 도박사이트 미성년자 이용 불가 안내 팝업 화면 캡처 |
지난달 28일 오후 6시께 영상 콘텐츠를 불법으로 스트리밍하는 한 불법 OTT 사이트에 접속했다. 해당 사이트 상단은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배너 광고 10여 개로 가득했다. '카지노' '슬롯' '당일 페이백' '베팅' 등 키워드가 보였다.
배너들 중 하나를 클릭하니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연결됐다. 메인 화면과 함께 신규 회원 가입을 유도하는 팝업창이 여러 개 떴다. 그중 하나에 눈길이 갔다. '미성년자 이용 적발 시 원금 몰수 및 즉시 탈퇴'라는 문장과 함께 미성년자의 이용을 제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불법 OTT 사이트에 배너로 광고하는 10여 개 도박 사이트 절반 가량이 미성년자의 이용이 불가하다는 공지를 띄우고 있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불법 도박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10대 청소년을 주된 타깃으로 삼게 됐다. 그러나 최근엔 온라인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청소년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법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한 한 시민단체가 청소년을 공략하는 도박 사이트의 '급소'를 노리면서 변화를 이끌어 냈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는 학생 제보자와 함께 불법 도박 사이트 계좌를 동결해 운영자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 /도박없는학교 제공 |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는 2021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20여 년 전 성인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적이 있다. 친구의 중학생 아들이 도박에 중독됐다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져 도박없는학교를 만들었다. 그는 불법 도박 운영자들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불법 도박 사이트의 계좌를 동결하는 '클린 계좌 프로젝트'다.
도박없는학교는 약 600명의 '학생 제보자'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제보자들이 불법 도박 사이트의 게임포인트 충전 계좌를 캡처해 제보하면, 도박없는학교가 이른바 '핫라인'을 통해 해당 은행에 계좌를 고발한다. 조 교장은 "불법 사이트 사용 계좌 대부분은 대포통장인데, 신규 계좌 신설이 제한되고 단속이 강화되면서 대포통장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계좌를 동결하면 운영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 계좌 프로젝트가 가시적 성과를 보이자 정치권도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국·대구 북구을) 의원이 프로젝트에 협력하기로 했다. 김 의원은 "예방·치유 중심 사업으로 청소년 도박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도박 사이트 광고를 차단하고 운영자의 계좌를 동결하는 등 더욱 근본적이고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도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도박 사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감위가 운영하는 불법사행산업감시신고센터는 신고 접수와 감시 활동 등을 통해 연간 수만건의 사이트를 적발하고 있다.
사감위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적발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차단을 의뢰한 건수는 2019년 1만170건에서 2023년 3만7천390건으로 4년간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경찰 수사 의뢰는 60건에서 124건으로 증가했다. 온라인 사이트는 계정을 바꾸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인 단속이 중요하다는 게 사감위 설명이다.
사감위 관계자는 "경찰청과 긴밀하게 협업해 불법 사행산업을 감시·단속하고 있다"며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도박 조직을 발견하기 위해 신고포상금(최대 5천만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흐름도 참조
→ 관련기사 (위험성·폐해 적극 예방교육… '치유 프로그램' 확대 절실해 [온라인 도박에 빠진 청소년·(下)])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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