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박물관에 1·2·3호 이관
한국전쟁 때 유실… '국립중앙'서 보관
市 박물관 역할·기능·방향성 등 수록
예술사 희귀자료, 아카이브 전시 예정
인천시립박물관 관보 '고적' 1호, 2호, 3호 표지.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
인천시립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1947년 발간 시립박물관 관보 '고적'(古跡) 창간호와 2호, 3호를 최근 완전히 넘겨받았다. 소실됐던 인천시립박물관 역사의 일부가 77년 만에 돌아왔다.
관보 '고적'은 시립박물관이 개관한 이듬해인 1947년 2월에 발간됐다. '고적'에는 박물관 관련 기사뿐 아니라 해방 이후 인천 지역 문화계 전반을 다룬 글들이 수록돼 지역 문화예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인천 출신 한국 1세대 미술평론가이자 시립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석남 이경성(1919~2009) 선생이 쓴 박물관의 방향 등 귀중한 글들이 실렸다. 특히 이경성 선생 등이 창간호에 쓴 '1946년 인천 문화계의 회고'는 문학, 미술, 음악, 공연예술, 학술, 교육, 언론·출판 등 '해방 공간 인천' 문화계의 분야별 동향을 총망라한 글이다.
박물관학, 고고학, 인류학 등 전문 논고는 물론 관람 인원, 주요 방문자 등 박물관 운영에 관한 기록도 있어 당시 박물관의 역할과 기능을 보여준다. 이경성 선생은 '고적' 창간호에 쓴 '인천박물관의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인천박물관의 방향을 말할지니 곧 지리적 특수성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즉, 무역항이라는 데서 오는 인천의 국제성과 지방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향토성이 그것이다. (중략) 인천박물관은 인천 부근의 도서를 포함한 향토사 연구에 주력하고, 그 분야의 권위가 되어야 한다. 문학산 부근, 계양산 부근, 그리고 강화도, 덕적도에서 멀리 석기시대로부터 고구려, 신라의 유물, 유적을 답사하고 조선 최근세사에 등장한 제물포 시대를 중심으로 외적의 침략에 대한 진실을 과학적으로 진열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인천박물관의 나가야 할 방향이고, 근본 사명이라 믿는다."
'고적'은 1950년 한국전쟁 이전 5호까지 발간됐으나, 전쟁 중 대부분 유실됐다. 그동안 시립박물관에는 6호(1956년 간행)와 7호(1959년 간행)만 소장돼 있었다. 시립박물관은 유실된 '고적' 초기 호들을 찾고자 여러 도서관을 수소문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 시립박물관 측은 우연한 계기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창간호, 2호, 3호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복제를 신청했는데, 뜻밖에도 실물을 이관받게 됐다.
시립박물관은 이번에 이관받은 '고적' 창간호 등 3권을 추후 조성할 박물관 아카이브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또 복간 작업을 통해 지역 사회에 배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적' 초기 호들을 찾는 데 역할을 한 시립박물관 배성수 유물관리부장은 "아직 찾지 못한 4호, 5호의 소재 파악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손장원 시립박물관장은 "관보 '고적'은 100부 한정으로 발간된 희귀 자료로, 완전히 소실된 줄 알았던 것인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것처럼 기뻤다"며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과 고고역사부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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