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플랫폼 인천
만남의 장인가 일종의 무대인가… 상상 속의 '판문점' 절찬상영 [ART-플랫폼, 인천·(7)]
공간 인식 재구성, 이병수 '임시극장'
11분5초 간 장소 3D 그래픽으로 구현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 시각화
작업 연장선 '벼룩유령'도 올초 전시
'미술품이 든 상자' 자본가 독점 폭로
이병수 '임시극장'(2020)의 한 장면. /이병수 제공 |
판문점 내에 있는 회담장이 정돈됐다가도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는 가운데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란 멘트가 계속 흘러나온다.(1막) 한밤중 판문점 건물 사이 의문의 자동차가 난수·암호 방송 같은 것에 맞춰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으려 하지만 방지턱에 걸려 버린다.(2막) 핑글핑글 돌아가는 회담장 안에서 헌병이 춤을 추고 있고 창밖은 클럽처럼 색색의 조명이다.(3막)
2020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11기) 입주작가로 활동한 이병수가 그해 8월7일부터 21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창고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임시극장(Temporary Fiction)'은 3막으로 구성된 11분5초 분량의 3D 컴퓨터 그래픽 비디오를 보여줬다.
작품의 소재는 판문점이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정치적 상황으로 잊을 만하면 뉴스 자료 화면 등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장소. 남북 정상이 만나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보기도 했던 장소.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롯한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도 여러 번 주목한 장소. 이렇듯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장소지만, 실제로 가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견학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려 해도 각종 제약이 많아 막상 가면 낯설게만 느껴지는 장소다.
이병수 작가는 우리가 익히 경험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그 장소는 안갯속에 갇힌 것처럼 뿌연 판문점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보자는 생각으로 '임시극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판문점은 굉장히 정치적인 장소로 인식되곤 한다. 작가의 작업도 그 맥락에서 풍자의 느낌은 있으나,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진 않는다. '극장'이란 작품명이 의미심장하다.
"판문점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남북 관계가 서로서로 필요에 의해 상황극 같은 것을 만들었다가, 순간 그러고 사라지는 일시적인 쇼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극장에 '임시'를 붙인 건 판문점 건물들의 명칭이 임시를 의미하는 T1, T2, T3 등으로 표시한 것에서 따왔습니다."
작가는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장소', '실재하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차원으로서의 상황이나 결핍에 대한 문제들'을 시각화하고 허구의 장소로 재건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임시극장'도 그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임시극장'은 인천아트플랫폼 유튜브 채널에서 4분짜리 요약본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병수 개인전 '벼룩 유령'(2024) 전시장 모습. /이병수 제공 |
작가가 지난 1월13일부터 2월3일까지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개최한 개인전 '벼룩유령'에서는 스위스의 자유무역항 포트 프랑으로 장소를 옮겨 소수가 독점하는 미술품 문제를 폭로한다. 인류의 문화자산인 미술품은 관세로부터 자유로운 자유무역항에 오로지 머물며 프라이빗 쇼룸에서 소수의 VIP(자본가)들에게만 보여지고, 서류상으로만 거래돼 소유자만 바뀔 뿐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가상의 자유무역항 미술품 거래 홍보 영상들과 미술품이 들어있는 목재상자('매트릭스')를 만들었고, 자본과 소유욕이 만든 자유무역항의 풍경을 조망하는 괴물 '벼룩유령'을 보여줌으로써 주제를 암시한다.
이병수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활동 이후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천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15주년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한국 현대미술에서 인천아트플랫폼은 영향력 있는 기관·레지던시로 분명히 꼽힐 것"이라며 "입주했던 작가들 개개인에게 어떤 양분이 돼 한국 현대미술을 성장시키는 데 큰 힘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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