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인천섬 사람들과 함께한 바위 형상, 마치 삶의 굴곡 같았죠"
[인터뷰…공감] 'Beyond IslandⅡ: 질곡의 삶…' 개인전 연 류재형 사진가
일제강점기 시절 자월도에서 돌 채취·떡바위에 줄 묶어 배 정박한 흔적 담아
원초적 느낌 살리는 아날로그 필름 고집… "디지털 화소를 늘려도 구현 못해"
"난 인천 정체성을 찾는 작가" 폐선 철길·연평도 꽃게잡이 조업 과정 촬영도
지난 16일 사진전 'Beyond IslandⅡ: 질곡의 삶, 섬에서 바위를 만나다'를 진행한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 내 작품 '자월도 떡바위' 사진 앞에 앉아있는 류재형 사진가. |
'미쳐야 미친다.'
어떠한 수준이나 목표에 다다르려면 미치광이처럼 미친 것이나 마찬가지의 집념이 있어야 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을 인천의 사진가 류재형(70)에게서 찾았다.
지난 15~20일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2에서 개최된 류재형 작가의 11번째 개인전 'Beyond IslandⅡ: 질곡의 삶, 섬에서 바위를 만나다'를 관람한 많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드디어 미쳤구나!(及)'
대청도, 소청도, 자월도, 소야도, 각흘도 등 인천의 섬에서 찍은 바위 사진 20여 점을 전시했다. 그림으로 치면 100호 크기에 육박하는 대작에는 거대한 섬 바위의 절경과 거친 표면의 질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16일 전시장에서 만난 류 작가는 섬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담은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번 작품들에선 단 한 명의 사람도, 사람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조금 더 설명을 들어보기로 했다.
"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섬의 역사를 조사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바위들을 찾았습니다. 사진에 바위밖에 보이지 않지만, 이 바위들은 섬의 역사를 알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위가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거칠지만 꿋꿋하게 섬을 지켜온 바위들이 섬 사람들을 보듬고 있고, 그들의 삶을 형상화한 모양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얀 분바위와 그 아래 물이 빠진 바위에 붙은 시커먼 홍합(섭) 밭이 강렬한 흑백 대비를 이루는 소청도 분바위 사진 앞에서 류 작가는 설명을 이어갔다.
"소청도 마을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분바위로 소풍을 갔습니다. 소청분교에 학생이 있을 때는 한 해는 등대로, 한 해는 분바위로 소풍을 왔죠. 갈 데가 그곳밖에 없었으니까요. 육지에서 온 손님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분바위 밑에는 엄청난 홍합 밭이 있는데, 아무나 따지 못했습니다. 1년에 겨울철 3~4번 정도 마을 사람들이 홍합을 땄고, 외지인은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소청도는 류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섬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이 숨어있는 기암괴석이 이곳 사람들의 질곡의 삶과 닮아서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0월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시기 설치했던 기뢰들이 소청도 해안으로 밀려왔다. 마을 주민들은 기뢰에서 유황을 빼내 연료로 쓰기로 했는데, 이 기뢰를 해체하던 중 그만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주민 59명이 목숨을 잃고, 8명이 다쳤다. 온 마을이 초상집이 됐다. 류 작가는 2018년 예술인들과 함께 소청도 기뢰 폭발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류 작가는 5년 전부터 섬을 주제로 한 'Beyond Island'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첫 전시는 문갑도에 있는 옹기 가마터를 주목했다. 1970년대까지 사용했던 옹기 가마터를 통해 삶의 애환을 표현했다.
이번 두 번째 전시는 3년을 준비했다. 4인치×5인치(10㎝×12.5㎝) 대형 필름을 쓰는 20㎏짜리 주름상자가 달린 대형 카메라에 렌즈 3개, 지지대를 힘겹게 들고 발이 푹푹 빠지는 해변과 갯벌을 지나 바위 위로 올랐다. 고된 작업이다. 대청도 농여해변의 수억 년 나이테가 쌓인 고목나무바위를 촬영하기 위해 일출시간에 맞춰 10번도 더 현장을 찾았다.
"낮에 농여해변 고목나무바위에 가면 늘 바위에 주름진 형상만 보입니다. 그런데 해변 넘어 군부대가 있어요. 밤에는 군인들이 총을 메고 해안가 초소로 올라가 밤새 경계 근무를 합니다. 초병은 바위와 함께 별도 보고 저 멀리 배도 보며 밤을 지샙니다. 해가 떠오를 때쯤 '오늘도 수고했다'며 바위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보름에 한 번씩 물때에 맞춰 바위를 찾았습니다. 해가 뜰 때는 거의 암흑 상태라 특별한 조명을 써야 (이번 작품과 같은) 아우라가 나오죠."
자월도 떡바위를 여러 시선에서 찍은 작품도 많다. 일제강점기 인천항 축항에 쓰인 돌을 자월도에서도 가져갔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돌을 채취한 흔적이 남았다. 떡바위에는 개의 머리 형상을 한 거대한 바위가 깎이지 않고 남아있는데, 이 바위에 밧줄을 감아 배를 댔다고 한다.
무인도인 각흘도의 서쪽 해안 사람 얼굴 모양 바위 아래 공간에선 인근 섬 주민들이 넘어와 솥단지를 걸고 밥을 지어 먹었던 흔적(그을음)이 여전히 밥 내음을 풍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류재형 작가 '대청도 농여해변 고목나무바위'(2024). /류재형 제공 |
스스로를 인천의 정체성과 인물을 찾는 사진가라고 소개하는 류 작가는 정체성을 찾다 보니 결국 섬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섬 사진 작업은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천은 해안 도시지만, 옹진군의 섬은 인천이 맞는지 되묻곤 합니다. 인천 도심의 역사는 깊고 기록도 쌓여 있고 일제강점기 모습도 남아있지만, 섬에서는 무질서의 바람이 혼돈의 환경을 만들었고 섬 사람들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 역사가 잘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개발과 성숙된 도시 구조의 모습이 아닌 자연적이고 투박하며 있는 그대로의 형태인 원초적 바위를 찍고 그 안에서 사람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인천의 정체성은 과거 사람의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그 무엇, 즉 상징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섬뿐 아니라 활동 반경인 인천 곳곳에 그의 카메라가 닿았다. 2005년 폐선된 주인선 철길을 여러 해 동안 따라갔으며, 연평도 꽃게잡이 배에 타서 조업 현장부터 꽃게가 연안부두로 들어오기까지 과정을 담기도 했다.
경기도 부천 복사골에서 태어난 류 작가는 서울에서 살다 1973년 인천으로 왔다. 서울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외삼촌이 인천 신포동으로 사진관을 옮겼는데, 그 집 다락방에서 지내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사진을 처음 만난 것도 외삼촌 덕분이었다.
결국 부모가 원하는 길이 아닌 대학 사진과로 진학하면서 쫓겨나다시피 온 곳이 인천이었다. 젊을 땐 인천에 흔치 않던 사진 학원을 운영했고,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인천가톨릭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 사진영상과 교수를 역임하며 수많은 제자도 길러냈다.
류 작가는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한다. 바위를 예로 들면 그 질감과 날카로운 빛, 입자의 빛이 춤을 추는 원초적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필름밖에 없다는 게 류 작가의 생각이다. 아날로그 멀티 슬라이드 여러 대로 사진 영상을 구현하는 퍼포먼스도 전시 때 종종 펼친다.
"디지털은 아무리 화소를 향상하고 늘려도 필름 같은 디테일을 낼 수 없어요. 필름이 가진 그 느낌을 완벽하게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거죠. 이번 전시작 필름을 인화해 디지털로 스캔하면 데이터(작품) 하나에 800MB, 900MB나 용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데이터입니다. 슬라이드 작업을 할 필름도 이젠 수입이 되지 않아서 재고가 떨어지면 명맥이 끊길까 아쉽습니다."
류재형 작가의 'Beyond IslandⅡ: 질곡의 삶, 섬에서 바위를 만나다' 전시장 모습. |
'Beyond Island' 두 번째 전시를 끝낸 류 작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곧바로 세 번째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후속 작업에는 사람이 등장할 것 같다. 섬 바위도 빠질 수는 없을 것 같다.
"판소리 명창이 바위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라든가, 섬 마을 유일한 잠수부를 바닷가에 세운다든가 하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많은 섬을 돌아다니기 어려워요. 이번 작업도 인천 섬 4~5곳 정도인데, 이것도 무척 힘듭니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그래도 제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류재형 사진가는?
1954년 경기도 부천 출생이다. 1973년부터 인천에서 사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인천가톨릭대 문화예술교육원 사진영상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태양사진연구소 소장이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문갑도 마을 만들기 문화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디지털 사진과 컬러의 관리 시스템을 전공하고 아날로그 멀티슬라이드 영상 작업도 한다. 1991년 부평 현대백화점 초대전 '사계'를 시작으로 '춤' '100인의 초상' '인천 앞바다 바로알기 탐사 사진전' '바다' 등 11차례 개인전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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