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인물100人

[인천인물100人·48] 조선후기 효의 표상 김정후

백세불후의 孝, 숭고한 정신을 뿌리다
   
 
  ▲ 지난 2004년 계양·김포지역 도시개발에 따라 집안 묘역이 있는 용인으로 이전한 김정후 효행 정려문 모습.  
 

   >48< 조선후기 효의 표상 김정후

   오는 7월 10일 다시 문을 여는 국내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에는 '효'와 관련한 특별한 유물이 전시된다. 일제시대에도 '백세불후(百世不朽)'의 효행으로 기려야 한다면서 당시 유림이 나서 표창까지 한 그 숭고한 '효'의 정신이 박물관을 찾는 모든 이에게 전해지게 됐다.
 
   조선 후기 인천의 대표 효자 김정후(金鼎厚·1789~1866).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대변(大便) 맛을 봐가며 변환상태를 살피기까지 한 김정후의 효행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이병규 등 지역 유림의 청원에 의해 1891년 3월 24일 고종의 왕명으로 예조에서 입안해 효자정각을 세우고, 그 자손에 까지 포상을 실시했다.

   고종 때는 정표(旌表)정책이 극도로 문란해져 개별 문중에서 자의적으로 효자각 등을 마구 세우던 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지역 학계에서는 왕이 직접 나서 세운 김정후의 효자정각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김정후의 효행이 밖에 알려진 것은 지난 해다. 그 자손이 인천시립박물관에 '김정후 효자정려 입안문서' 등 고문서를 기증하면서부터다. 이 문서는 1891년 지금의 계양구 노오지동에 사는 김정후의 효행을 기려 예조에서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에 대해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을 세워 기리던 일)를 내리게 된 내용을 적고 있다.

   김정후의 효행은 참으로 지극하다. 어릴 때부터 효심이 남달랐던 그는 어머니가 병환으로 고생하시기를 3년이 되던 해, 한 겨울에 동생과 함께 얼음을 깨고 고기(잉어)를 잡아 봉양했고, 특히 어머니께서 설사병으로 수개월을 고생하자 그 변을 매번 맛을 보아 상태를 살필 정도였다고 한다. 모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고기반찬 없는 밥이나 죽을 먹는 등의 철저한 시묘살이를 3년 동안 했다고 한다. 특히 매일 성묘를 가는데, 비바람이 불거나 한겨울·한여름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시묘살이가 얼마나 지독했는 지는 그 집안의 족보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성묘 길의 이슬을 누군가가 매일같이 먼저 떨쳐내 그의 옷이 젖지 않았고, 학처럼 생긴 새 한 마리가 길가에서 날아가지 않고 아는 체 했다고 쓰고 있을 정도다. 또 칠순이 넘어서는 걷기가 불편해 지자, 꿈에 한 노인이 현몽해 지팡이를 점지해 줬다고 한다.
   
▲왼쪽부터 1981년 예조에서 김정후의 효행을 기려 정려를 내리고 자손에게는 역과 잡세를 면제한다는 점을 명문화한 '예조입안'증서, 1923년 전국유림회에서 김정후의 효행을 되새긴 포장, 1891년 김정후의 효행을 기려 관직과 품계를 높인 교지.

   이러한 김정후의 효행은 지역의 대표적 효행으로 전해져 오다가 일제시대 초기인 1923년에는 당시 유림 내 중요 조직이었던 '공부자성적도오륜행실중간소(孔夫子聖蹟圖五倫行實重刊所)에서 전국의 각종 관련 자료를 수집하면서 김정후의 사례를 접했다. 이 사례를 접수한 유림에선 전국에서 온 효행 사례 중 으뜸이라 여겨 포장(표창장)에 '백세불후의 효행으로 기릴 만하다'는 내용의 문구까지 담았을 정도다.

   그는 1891년에 '동몽교관'이란 관직을 내려받았고, 그의 자손까지도 부역과 잡세를 면제받기도 했다.
김정후의 효자문 정각은 지난 2004년 계양·김포지역 도시개발에 따라 집안 묘역이 있는 용인으로 이전한 상태다. 이 효자각은 1981년 중수하였지만 1891년 고종이 내린 현판과 당시 쓴 주요 재료가 그대로 남아 있는 원형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이 효자문을 용인으로 옮길 때는 유물 기증의 장본인이기도 한 5세손 김종헌(78)씨가 마음 고생이 심해 병을 얻기까지 했단다. 정려각은 집안에 내린 것이지만 그 지역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가 높은데, 이를 먼 지역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집안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물을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은 할아버지의 숭고한 효행을 많은 사람이 본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다른 귀한 고문서도 함께 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여기엔 김정후와 관련된 문서뿐만 아니라 19세기 이래 토지매매문서, 소송기록, 호구단자를 비롯해 일제시대 부평수리조합 관련 문서 등이 있다. 부평의 근대사를 복원하는데 더 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김정후의 후손에게서 기증받은 유물을 분석한 윤용구 인천시립박물관 연구실장은 “김정후의 효행은 조선중기 을사사화로 낙향해 평생을 은거하면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한 11대조 김원의 뒤를 이은 가문의 전통이라고 할 만하다”면서 “특히 고종 때 예조의 정식 코스를 밟아 효자로 임명됐다는 점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김정후의 자손이 귀중한 유물을 기증한 것에 대해서는 시민을 대신해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김정후의 효행은 집안의 전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천지역에 알게 모르게 그의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부평에 사는 50대의 충남 당진 선영에서의 3년 시묘살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고, 효 운동도 인천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인천순복음교회와 지역 국회의원 등이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주도하고 있고, 가천문화재단이 주는 '심청효행상'과 성산청소년육성재단이 제정한 '전국성산효행대상'등은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인천시에서도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인천 효의정신'이 전 시민에게 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찾고 있는 중이다.

   ■김정후 선생 6세손 기범씨/인터뷰
   

   "할아버지의 지극한 효행을 생각할 때마다 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할아버지의 그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인천의 대표적 효자로 꼽히는 김정후 선생의 6세손이 되는 김기범(51)씨는 족보에 적힌 할아버지의 효행을 보면서 스스로를 반성한다고 말한다. 부모의 병환을 살피기 위해 대변의 맛을 보고, 하루도 빠짐없이 3년 시묘를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효행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해 아버지(78)와 상의한 끝에 할아버지와 관련한 고문서 등 유물 일체를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집안의 '가보'를 선뜻 내놓기까지는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모두에게 할아버지의 숭고한 효행정신을 알려 각박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효'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기증을 결심하게 됐다. 이런 김씨의 바람대로 김정후 선생의 '효 정신'은 시립박물관 전시실에서 되살아 나게 된 것이다.

   김씨는 2004년 할아버지의 효행정려문을 원래 있던 인천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옮긴 것에 대해 죄스러움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님께서는 정려문을 이전하고 나서 뇌졸증을 앓으실 정도였어요. 대대로 전해오는 정려문을 옮기는 것은 할아버지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요즘엔 무척 좋아지셨습니다."

   김씨는 "요즘 국가에서는 효행을 법으로 정해 장려한다고 하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와야 할  효심까지 강제하는 사회현실이 무척이나 안타깝다"면서 "아무쪼록 할아버지의 효행이 앞으로 계속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진오기자·schild@kyeongin.com>



경인일보 포토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정진오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