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사다리②
“맞아.”
“그래도 스카이 섬까지 오실 생각을 하시다니 프로급이시네요.”
“우리보다 학생이 한 수 윈 거 같은데? 자전거로 스코틀랜드를 횡단하다니.”
그는 아직도 느릿느릿 횡단하는 소 떼에게 시선을 꽂다말고 아예 차에서 내려선다. 그리고 허리 굽히기 맨손 체조를 몇 번 시도한다.
“그래, 어디서부터 자전거로 출발했지? 에든버러?”
그가 묻는다.
“아녜요. 기차로 리버풀까지 와서 시작했어요.”
“리버풀에서? 햐, 굉장한 거리를 자전거로 달렸구만. 그래, 며칠 걸렸어?”
“이제, 열흘째예요.”
“열흘씩이나, 혼자서?”
박준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힐끔 차 안을 들여다본다. 여자가 앉아 있다. 머리를 묶어 올린 모습이 그토록 우아할 수 없다. 특히 우윳빛 목덜미가 더욱 그러하다. 그녀는 여행안내 지도를 펼쳐들고 있다.
그녀가 고개를 든다. 박준호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순간, 뭔가 번쩍한다. 전류다. 짜릿하다. 그것도 시냇물처럼 조용조용 흐르는 게 아니다. 목표물에 명중한 총알처럼 요란하게 관통한다.
왜일까, 왜 짜릿한 것일까. 그래, 저건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여인상이야. 마치 흐릿한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췄을 때 드러난 그림처럼, 마냥 뿌옇다가 마침내 선명하게 잡히는 영상. 그래, 바로 저 얼굴이야. 지금까지 저 얼굴을 찾기 위해 방황했는지도 몰라. 톰라더 부인도, 시루코도, 마거릿도, 어머니도 아닌, 전혀 다른 이미지의 신선한 얼굴.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박준호가 입을 열었지만 이상하게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고개만 끄덕했을 뿐이다. 그녀도 끄덕 답례한다.
“여보.”
그녀가 남편을 부른다.
“왜, 그래?”
“이거, 말이에요.”
그녀가 여행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스카이 스펠링 말이에요. 미스프린트겠죠? 이런 단어는 본 적이 없는데.”
아하, 그녀도 호기심이 많구나. 예민하구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구나. 그녀의 남편이 “맞아. 미스프린트일 거야. 대영제국이라고 실수 없으란 법 있어?” 우물우물 넘기는데, 방조하지 않고 불쑥 나선 것도, 그녀의 남다른 호기심에 야릇한 동질감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미스프린트가 아니구요. 케리크 어하고, 아일랜드 어하고 합성된 단어던데요.”
자신도 똑같은 호기심을 가졌었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며 박준호가 계속한다.
“더블유 아이 엔 지, 윙 있죠? 스카이 섬이 날개를 달고 날아갈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스카이에 이를 하나 더 첨가시켰다는 겁니다.”
그녀가 놀란 눈을 하고 이쪽을 본다. 경이롭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싶은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언제, 그런 공부까지 했어?” 감탄해 마지않는다.
“공부는요,…본래 궁금한 걸 못 참는 성미라서 시골 도서관을 뒤졌을 뿐이에요.”
“도서관을 뒤졌다구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영국엔 도서관이 많거든요.”
박준호가 양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린다.
“케리크 어 잘 알아요?”
그녀가 묻는다.
“잘 알기보다 그냥 더듬더듬 읽을 수 있을 정도죠.”
“그게 켈트 어라는 건가요?”
“맞아요. 영어가 나오기 전에…일종의 고대어죠.”
그녀가 재삼 놀랐다는 표정이다.
“도서관을 뒤질만하네요.”
그리고 씨익 미소를 짓는다.
“맞아.”
“그래도 스카이 섬까지 오실 생각을 하시다니 프로급이시네요.”
“우리보다 학생이 한 수 윈 거 같은데? 자전거로 스코틀랜드를 횡단하다니.”
그는 아직도 느릿느릿 횡단하는 소 떼에게 시선을 꽂다말고 아예 차에서 내려선다. 그리고 허리 굽히기 맨손 체조를 몇 번 시도한다.
“그래, 어디서부터 자전거로 출발했지? 에든버러?”
그가 묻는다.
“아녜요. 기차로 리버풀까지 와서 시작했어요.”
“리버풀에서? 햐, 굉장한 거리를 자전거로 달렸구만. 그래, 며칠 걸렸어?”
“이제, 열흘째예요.”
“열흘씩이나, 혼자서?”
박준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힐끔 차 안을 들여다본다. 여자가 앉아 있다. 머리를 묶어 올린 모습이 그토록 우아할 수 없다. 특히 우윳빛 목덜미가 더욱 그러하다. 그녀는 여행안내 지도를 펼쳐들고 있다.
그녀가 고개를 든다. 박준호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순간, 뭔가 번쩍한다. 전류다. 짜릿하다. 그것도 시냇물처럼 조용조용 흐르는 게 아니다. 목표물에 명중한 총알처럼 요란하게 관통한다.
왜일까, 왜 짜릿한 것일까. 그래, 저건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여인상이야. 마치 흐릿한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췄을 때 드러난 그림처럼, 마냥 뿌옇다가 마침내 선명하게 잡히는 영상. 그래, 바로 저 얼굴이야. 지금까지 저 얼굴을 찾기 위해 방황했는지도 몰라. 톰라더 부인도, 시루코도, 마거릿도, 어머니도 아닌, 전혀 다른 이미지의 신선한 얼굴.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박준호가 입을 열었지만 이상하게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고개만 끄덕했을 뿐이다. 그녀도 끄덕 답례한다.
“여보.”
그녀가 남편을 부른다.
“왜, 그래?”
“이거, 말이에요.”
그녀가 여행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스카이 스펠링 말이에요. 미스프린트겠죠? 이런 단어는 본 적이 없는데.”
아하, 그녀도 호기심이 많구나. 예민하구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구나. 그녀의 남편이 “맞아. 미스프린트일 거야. 대영제국이라고 실수 없으란 법 있어?” 우물우물 넘기는데, 방조하지 않고 불쑥 나선 것도, 그녀의 남다른 호기심에 야릇한 동질감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미스프린트가 아니구요. 케리크 어하고, 아일랜드 어하고 합성된 단어던데요.”
자신도 똑같은 호기심을 가졌었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며 박준호가 계속한다.
“더블유 아이 엔 지, 윙 있죠? 스카이 섬이 날개를 달고 날아갈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스카이에 이를 하나 더 첨가시켰다는 겁니다.”
그녀가 놀란 눈을 하고 이쪽을 본다. 경이롭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싶은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언제, 그런 공부까지 했어?” 감탄해 마지않는다.
“공부는요,…본래 궁금한 걸 못 참는 성미라서 시골 도서관을 뒤졌을 뿐이에요.”
“도서관을 뒤졌다구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영국엔 도서관이 많거든요.”
박준호가 양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린다.
“케리크 어 잘 알아요?”
그녀가 묻는다.
“잘 알기보다 그냥 더듬더듬 읽을 수 있을 정도죠.”
“그게 켈트 어라는 건가요?”
“맞아요. 영어가 나오기 전에…일종의 고대어죠.”
그녀가 재삼 놀랐다는 표정이다.
“도서관을 뒤질만하네요.”
그리고 씨익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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