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사다리⑥
그녀가 두 손으로 턱을 고인 채 고개를 끄덕인다.
“전, 관광학이나, 수리학, 아니면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어머닌 꼭 법학 쪽을 택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인데?”
“글쎄요. 어머니가 워낙 완강한 분이라서….”
박준호가 괜히 주변을 휘둘러 본 다음 나지막하게 말을 잇는다.
“…이런 얘기 막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얘긴지…해요, 어서.”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재촉한다.
“비밀인데두요?”
“비밀?”
“네, 비밀을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실래요?”
“좋아요.”
그녀도 약간은 긴장된다는 듯이 몸을 고쳐 앉는다.
“실은…아니, 왜 제가 첨 뵙는 분에게 제 비밀을 털어놓으려 하는지 제 자신도 잘 모르겠거든요. 솔직히 이건, 지금까지 없었던 일입니다. 아무에게나 비밀을 누설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전….”
“그렇군요. 어쨌든 말을 꺼냈으니까 해 보세요. 비밀은 지킬 테니까.”
“지금 전화 때문에 내려오지 못하는 분에게도 적용되는 일이에요, 이건.”
“어머, 제 남편에게도?”
“물론이죠. 그래도 약속하실 겁니까?”
“좋아요.”
그녀는 쾌히 승낙한다.
“실은, 제가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 것도 어머니에게서 멀리 도망치고 싶은 일념 때문이거든요.”
“도망?”
“네.”
“어머니가 영국에 함께 살아요?”
“그럼은요.”
“한데, 왜 도망쳐요?”
“어머닌 제가 기필코 법대를 선택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머니 뜻에 순종해야 한다면 전 지금 헤이스팅스에 있어야 합니다.”
그녀가 박준호의 말허리를 끊으며,
“헤이스팅스에 살아요?”
“네, 헤이스팅스에 삽니다. 그쪽 잘 아세요?”
“아직, 가 보진 못했구요, 얘기만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랑 헤이스팅스에 사는군요?”
“맞습니다. 우리 어머니 고집이 세신데다가 지금이 옥스퍼드 법정대학 면접 기간이거든요. 하지만 전 용기를 냈습니다. 어머니에게 메모 한 장 달랑 써 놓고 도망쳤습니다. 혼자 자유로워 졌습니다.…앞으로도 전 계속 자유로워 질 겁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데도 눈빛은 시원하지 않다. 호기심이 그윽하다.
“그런데 왜 법 공부를 싫어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가족 사정으로 법을 공부해야 될 이유도 없진 않아요.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그러나 전 법 그 자체를 굴레라고 생각하거든요.”
“굴레?”
“전, 날아다니는 새처럼 살고 싶어요. 제 얘기 이해 못하시겠습니까?”
“글쎄, 아버진 언제 돌아가셨죠?”
“저희 아버진 제가 어렸을 때….”
“그럼, 영국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요?”
“아녜요. 아버지하고 셋이.”
“아버지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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