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사다리 (19)

 

 

 

 

 

 

 




 

 

박준호는 벌떡 일어선다. 통나무를 찾아 화덕 가득히 집어넣는다. 그리고 발가벗은 그대로 오두막을 튕겨 나온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다. 전신으로 비를 맞는다. 폭발할 것 같은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는 두 팔을 허공으로 치켜올리고 “야호, 얏호!” 굉음을 지른다. 결승전의 연장전에서 천금의 골을 성공시킨 선수처럼 온몸을 하늘로 솟구쳐 올린다. 너무도 흡족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손 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둥둥 뜨는 것 같다. 박준호는 맨발로 숲길을 냅다 달리기도 하고, 풀더미 위에 그대로 드러눕기도 한다. 그래도 열기는 쉽게 식지 않는다.

마치 샤워를 끝내듯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몸을 씻고 그가 다시 오두막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축축한 옷을 다 껴입고 벽난로 앞에 우뚝 서 있다. 박준호가 그녀 가까이 다가간다. 너무 사랑스런 모습이다.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용솟음친다.

“……어때요? 이제 추위가 가셨나요?”



박준호가 입을 연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일렁이는 불꽃만 보고 있다.

“밖에는 비가 아직도 줄기차게 내리는데요.”

그러면서 그녀 어깨에 슬그머니 손을 얹는다. 바로 그 순간이다.

“철썩!”

불이 번쩍한다. 박준호의 왼쪽 뺨을 찢어발긴 그녀의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고 있다.

“썩, 비키지 못해! 한 발자국만 가까이 오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녀가 경고한다. 한 마리 앙칼스런 승냥이다.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박준호가 슬슬 뒷걸음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주섬주섬 옷을 걸친다. 그리고 도망치듯 오두막을 나선다. 어떻게 자동차까지 내달렸는지 모른다. 자동차 문을 연다. 그녀가 그토록 염려하는 딸아이가 “엄마, 엄마.” 울먹이고 있다. 진작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머리가 비에 젖어있는 걸 보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기까지 한 모양이다.

“그래, 그래. 엘리시온, 엘리시온이라고 했지?”

박준호가 아이를 안아 올리며 말한다.

“그래, 엄마한테 데려다 줄게.”

물론 그는 아놀드 쇤베르크의 테이프와 워크맨을 잊지 않고 챙겨 든다.

박준호가 아놀드 쇤베르크의 `야곱의 사다리'를 듣기 위해 누른 것은 두 모녀의 잠자리를 벽난로 앞 풀 담요 위에 만들어 놓은 다음이다. 아니, 두 모녀가 그곳에 누워 휴식을 취한 다음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설명이다. 시간은 새벽 한 시다.

기실 그 일은 그것으로 끝을 냈어야 옳았다. 한데 그 비는 그치지 않았고, 바람 역시 계속 불었으며, 간혹 덧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또 다른 적막을 깨뜨렸으므로 박준호는 의외로 쉽게 잠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벽난로의 불이 꺼지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비바람의 영향으로 실내가 여전히 으스스 추웠기 때문이다.

박준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젖은 통나무를 벽난로에 채워 넣는 일에 열중한다. 그러다가 참나무 불꽃에 일렁이는 스카이 홍의 잠자는 얼굴과 매혹적인 둔부를 본 것이었다. 그 옆에 엘리시온도 잠들어 있다.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다. 박준호가 엘리시온이 깊이 잠들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귀를 가까이 들이대고 숨소리를 듣는다. 손을 흔들어 눈동자의 움직임도 감지한다.

옳거니, 정말 깊이 잠들어 있다.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정도다. 자동차 속에 혼자 남아 공포에 떨었던 기억 때문에 심신이 극도로 피로한 모양이다. 박준호는 안심하고 그녀 옆에 들어가 눕는다. 또 다른 열기가 폭발 직전의 화산 가스인 양 무서운 힘으로 솟아오른다. 그러나 박준호는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살포시 그녀를 끌어안는다. 키스를 한다. 이마에, 볼에, 콧등에 그러다가 입술에 혀끝을 가볍게 꽂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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