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귀국 ⑥

서승돈이 말을 잇지 못했으므로 박준호가,

   


“죽였다는 건가요?”

하고 말한다.



그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정말 난감하다는 듯이, “그래”하고 고개까지 끄덕인 다음, “죽인 거란다. 다시 말해서 없애 버린 거지. 없애 버린다는 뜻이 바로 제거거든. 제거란 뜻 이제 알겠니?”

박준호는 알았노라고 고래를 끄덕이지 않는다. 박준호는 지금 흥분상태다.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궁금한 것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다.

“왜, 아버지를 제거했죠? 아니, 누가 그렇게 한 거죠?”

“이런 얘길 꼭 해야 되는 건지… 하지 말아야 하는 건지… 아냐. 너도 이제 청년이니까 알 건 알아야지.”

그가 박준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마치 연극 배우 대사 발성하듯 조용조용 말하기 시작한다.

“너의 양아버지 대니 라일러 말이야. 그 무렵 주한 미군사령부 정보장교로 부임했었거든. 그자가 일을 꾸민 거야. 거짓 정보를 흘렸어. 박 대령이 북한 당국과 내통하고 있다고 말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역시 미군 사령부 정보는 절대적이었거든. 허무맹랑한 정보인줄 알면서도 대한민국 군사정권 핵심인물들은 옳다구나 박수를 친 거란다. 안 그래도 항상 가시처럼 걸렸던 게 너희 아버지란 존재였으니까. 그냥 그대로 방관해버리면 또 다른 장교들이 정권에 항명할 공산도 있고… 그래서 모델케이스로 명령을 내린 거란다.”

박준호가 묻는다.

“뭐라고 명령을 내렸는데요?”

“박상구 대령 그 자식 제거해버려!”

서승돈은 생각만해도 그때 그 일이 몸서리쳐지는지 필요 이상의 힘을 가해 여송연의 불을 북북 비벼 끄고 있다.

그날, 박준호는 헤이스팅스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난생처음 많은 술을 마신다. 그는 귀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허투루 내 버리고 있다. 박준호를 그처럼 극단적으로 만든 어머니도 그러하지만, 심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샅샅이 추적하던 스카이 홍의 흔적까지 잠시 잊어버리고 있다.

그때 박준호에게 절실한 것은 어이없게도 앙갚음이다. 이름하여 복수다.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는 복수의 열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제거되도록 음모를 꾸민 장본인이 양아버지 대니 라일러라니….

어떻게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한 지붕 밑에서 그것도 매일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 침묵의 식사를 하며 수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박준호는 치를 떤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며 그 궁리에 골똘한다. 정말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 것은 난생 처음이다. 술집에서 혼자 들이부은 것도 모자라 슈퍼용 포켓 위스키까지 사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상태다. 박준호는 무심코 공중전화부스에 들어서면서도 병 나발을 분다. 기실은 특별히 누구에게 전화를 걸겠다는 생각도 없다. 딱히 대상이 있다면 어머니겠지만, 지금 기분으로 어머니에게 무슨 항변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 대니 라일러가요, 우리 아버지를 죽였대요! 설마, 어머닌 모르고 계셨겠죠? 전요, 지금 기분 더러워요. 완전히 바닥이에요. 뭔가 잡히는 대로 찢어발기고 싶은 충동으로 몸서리치고 있어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깊은 의식 속의 울분이고, 치욕일 뿐이었다.

끄억, 술트림을 하면서 박준호가 기어코 찍은 전화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어머니가 아니라 마거릿이다.

“여보세요.”

그러나 전화는 마거릿이 받지 않는다. 목소리로 보아 목장 주인인 길버트경 같다. 포츠머스 법원판사를 거쳐 지금은 외무성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는 마거릿의 큰아버지다.

“마거릿을 찾는데요.”

박준호가 정신을 바짝 차린 음성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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