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연못 ⑧

 

 

 

 

 

 

 





 

“그래, 잘했구먼. 그런데 무슨 얘길 하던가?”

“너무 가까이는 갈 수 없어서…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습니다만, 얼핏 들으니까 주로 음악 얘길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작곡가가 윤이상이니, 파바로티니 뭐…, 그런 이름이 언뜻언뜻 들렸습니다.”

“그것뿐이야?”



“그 이상은 없었습니다.”

“둘이 걸으면서 손은 잡지 않았어?”

“아, 잡았습니다. 여자 쪽에서 먼저 잡으니까, 남자가 머뭇머뭇 주변을 살폈습니다.”

“그밖에 보고할 만한 건 없나?”

“별다른 상황은 없습니다. 생각보다 조용한 데이트를 즐기고 헤어졌으니까요.”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다.

“수고했어. 낼 봐.”

김상도가 수화기를 죽이고 벌떡 일어나 선다. 이 번거로운 전화를 비서진에게 일임하지 못하고 직접 원수창을 상대하는 자신이 퍽 피곤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이같이 사적인 일일수록 완벽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위안받곤 하는 김상도다.

지금쯤 홍주리는 집에 돌아와 있을 시간이다. 김상도는 관리인에게 전화를 넣도록 지시할까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단념한다.

‘아서!’

설사 통화가 된다고 해도 무슨 말을 꺼낼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말마따나, 그것이 프라이버시라면 더욱이나 함부로 관여할 상황이 아닐 터다. 하나, ‘아서!’라고 고개를 저으면 저을수록 더 괘씸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서승돈이다. 감히 서승돈 따위가 홍주리에게 접근하다니! 아니, 자신의 간곡한 부탁을 일시에 매정하게 거절하게 만든 그 주인공이 서승돈이라니.

서승돈-.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제놈이 언제적 서승돈인가. 선머슴이나 진배없는 놈을 데려다가 누가 가르치고, 누가 대패질하고, 누가 니스칠해서 오늘날 대영림그룹의 노른자위인 전자 대표 이사 자리에 올려놨는가.

생각해 보자. 신입사원 출신의 서승돈을 최고 경영자 반석 위에 올려 놓느라 얼마나 많은 홍역을 치렀는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기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제풀에 중도하차하지 않았던가.

“왜 서승돈만 감싸시고, 서승돈만 편애하십니까?”

“이건 분명 인사 규정에 없는 조첩니다.”

“전 부장대우 진급하고 5년짼데도 아직 꼬리를 못 뗐는데, 서승돈은 왜 1년만에 이삽니까?”

“아무리 서승돈이지만, 아직 애송입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내 수하에 부리던 부하 직원이었는데, 어떻게 나보다 높은 본부장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까?”

“우리보고 모두 보따리 싸서 나가라는 말씀 같은데, 좋습니다.…하지만 두고 보십쇼. 서승돈에게 크게 다치실 날이 있을 테니까요.…회장님, 제 말씀 들으십쇼. 서승돈, 그자야말로 등 뒤에 칼을 찌르는 가증스런 놈입니다.”

서승돈의 벼락 출세 때문에 갈갈이 찢겨 마침내 옷 벗고 나갔던 영림그룹 초창기 동지들이 이구동성으로 읍소하고 저주했던 대목들이다.

하나 그 많은 읍소와 저주를 깡그리 묵살하고 오로지 제놈 하나만을 높이 높이 올려 최정상인 대표이사 자리에까지 기어코 안착시키지 않았던가. 물론 서승돈의 재빠른 판단력과 누구보다 앞서가는 강력한 추진력과 결코 물러설 줄 모르는 끈질긴 집착력, 그리고 의외로 담담한 친화력 등이 김상도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던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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