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도 박물관장의 '명사와 골동품 이야기' ·2]

경인일보

발행일 2006-11-06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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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과 진사주전자 [2]

사실여부를 떠나, 요즘도 재벌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백지수표가 건네졌다는 것이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곤 하는데, 당시 골동계에서는 이 청자매입건이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강화도 일원의 고려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이 청자주전자는 해방후에 알려진 문화재계 최대의 사건이었다. 고려말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권력자였던 최충헌의 손자, 최항(崔沆, ?~1258)의 묘지석, 그리고 다른 몇점의 청자들과 함께 출토되었다고 알려진 이 주전자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는데, 그 첫째 이유가 이 물건을 보고 급히 김 박사 등 주변의 자문을 구한 이병철 회장이 장아무개에게 백지수표를 건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진사가 발려진 청자로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완벽한 청자라는 사실에 있었다. 속칭 진사라고 불리는 붉은 색의 채색안료인 이산화동(CuO2)으로 장식되어 있는 이 청자주전자는 엄청난 양의 진사채색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보통 골동가에서는 진사장식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값이 엄청나게 뛴다. 이 주전자에는 연꽃잎의 가장자리를 따라 화려하게 진사가 채색되어 있어, 진사채의 사용량만 하여도 여느 도자기는 따라올 엄두도 못낼 만큼의 명품이었다.

이 회장은 이 진사에 크게 마음이 끌려 나중에 도자기를 알 만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이 진사주전자를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였고, 특히 진한 닭피처럼 시뻘겋게 물든 진사기법이 중국보다 몇백년이나 앞서 있었다고 굳게 믿었다. 학술적으로 볼 때, 이 진사주전자는 제작연대를 알려주는 최항의 묘지석과 함께 입수되었기 때문에, 자료로서도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뛰어난 명품임이 분명하다. 또한 기술적으로 보더라도, 반짝이는 유약층 바로 아래에 깔려 있는 진사는 700도 정도의 고온에서도 쉽사리 휘발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쉽게 만들어지는 물건이 아님은 분명했다.

집념의 소유자였던 그는 이 진사주전자를 청자재현 전문가(석봉 조무호)에게 의뢰하여, 그 유약의 색깔이나 진사의 발색을 원작에 가깝게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여러번 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기대하였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자, 그는 요즘 기술이 옛날 고려때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진다고 푸념하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재현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요즘 만드는 기술로 옛날의 청자맛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그 불타는 진사의 발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묘한 맛을 풍기고 있으니까, 재현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유명세를 탔던 진사주전자는 1970년대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드디어 공개적으로 일반에게 그 화사한 자태를 선보이게 된다. 이병철 회장의 아호인 호암을 따서 `호암소장의 문화재전시'라는 타이틀로 열렸던 이 전시회는 대그룹 삼성회장 개인의 수집품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회장은 이후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개인소장의 미술품 거의 대부분을 기증하였으며, 이어서 1982년 오늘의 호암미술관을 세우고 이 진사주전자는 국보133호로 지정되어 호암미술관 소장품의 간판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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