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도 박물관장의 '명사와 골동품 이야기' 3]

경인일보

발행일 2006-11-13 제8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이병철과 진사주전자 [3]

이병철 회장이 특히 아꼈던 소장품으로는 진사주전자 외에 청자상감국모란문매병, 그리고 가야금관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 주전자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대단했다. 그는 혹시라도 사고가 날 것을 염려하여 절대로 오리지널 유물을 직접 꺼내보지 않고, 그대신 모조품을 만들어 그것을 가까이 두고 즐거움에 대신하곤 하였다. 그리고 이 주전자를 전시하도록 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30밀리 방탄유리로 진열장을 만들도록 하여, 만일 있을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그가 일주일에 한두번씩 용인의 별장에 들를 때마다 호암미술관에 들러서 그 주전자를 흐뭇하게 바라보곤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러면,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청자진사주전자의 무엇이 그렇게 좋은 것일까? 이제부터 문제의 주전자를 자세히 보기로 하자.

청자는 크게 나누어 비색청자, 상감청자 기타 등으로 분류될 수 있고, 시대로는 11~12세기의 비색청자, 13~14세기의 상감청자로 대별된다. 고려말의 상감청자는 기법이나 시문방법 등이 그대로 조선시대로 이어져 조선초의 분청사기로 그 전통이 계승된다.

이 진사주전자는 기타계열의 청자로 기법상의 전통은 비색청자로부터 받았지만, 조형수법이나 진사채색의 활용 등 청자로서는 후기의 수법을 보인다. 거기에다 함께 나왔다고 전해지는 일괄유물들이 상감청자라는 이야기도 전하고, 실존인물 최항의 묘지석도 나와 있어서 학계에서는 13세기이후의 연대를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통하여 불교를 도입하여 국교로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융성하던 시기가 고려말까지 지속되었다. 따라서 우리 미술품중에는 불교의 중심소재가 되었던 연꽃이 활용된 유물들이 무척 많았다. 연꽃은 진흙속에서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까닭으로 해서 불교미술품 어디서나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부처가 앉아 있는 대좌나 건물의 기와장식 혹은 단청장식 등등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불교가 최고조로 꽃피웠던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그런 현상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특히 청자는 처음부터 절에서 사용되는 기물들을 조달하기 위해서 생산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속에 있었다.

이 회장이 수집한 이 청자진사주전자도 장식의 기본은 연꽃을 이용하고 있어서 고려사회의 불교취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주전자는 표주박의 형태를 갖고 있으며, 몸통 전체를 화사하게 피어 오르는 연꽃을 표현하고 있다. 연꽃잎은 내부를 음각으로 장식하고 외곽선을 진사채색으로 밝게 처리하였다. 몸통의 상단은 연꽃 줄기를 껴안고 있는 어린 동자를 조각하고 손잡이와 뚜껑에는 개구리를 조각하여 운동감을 살리려고 하였다.

조형적으로는 물론이고 제작수법 등으로 보아 두개가 있을 수 없는 고려 무단정권의 실력자가 썼던 `명품 주전자'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병철의 품속으로 찾아가 오늘의 삼성미술관에 당당하게 진열되어 뭇사람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게 되었다.


경인일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