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스무 살을 아름답다 하는가 ⑮
시노야마 기신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한다.
“그 정도면 됐소.…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변호사 양반, 서명 받을 서류가 어딨소?”
변호사가 아까부터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넨다.
“그래, 여기다 사인하시오. 20만 달러를 수령했다는 영수증이요.”
20만 달러라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얼만가? 2억원이 넘는 거액 아닌가. 박준호가 머뭇머뭇 말문을 연다.
“잠깐만요.…아무리 생각해도 전 그 돈을 받을 만한 입장이 아닌데요.…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시노야마 기신이 뭔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연다.
“참, 시루코는 당신에게 돌려 줘야 할 물건이 있다고 늘 말했소.”
그래, 비취 메달 목걸이, 브라이튼 여름 별장에서 첫 결합이 있던 날 밤, 강탈하다시피 가져간 목걸이다. 그녀는 볼모용으로 잠시 보관하겠다고 말했지만, 끝내 돌려받지 못하고 헤어져 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래요. 시루코 여사가 보관하고 있었던 목걸이가 있습니다. 비취 메달이라서 값으로 치면 별거 아니지만. 제 집안에서는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노야마 기신이 박준호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연다.
“이 20만 달러가 그 물건값이라고 생각하쇼.”
“물건값이라뇨?”
“시루코는 그 목걸이를 자신의 시신과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물건과 함께 영원히 묻히고 싶어 한 거요.”
이튿날, 박준호는 전화를 건다. 영림전자 서승돈이다.
“사장님, 저 준홉니다.”
“그래, 일취월장 한다면서? 영등포에 건물도 짓고…참, 준공식을 거창하게 가졌다던데….”
“네, 사장님은 외국 출장 중이라서 초대장도 띄우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래. 그랬었지. 대신 중소기업 이사장이 참석했다더군.”
“다 사장님이 밀어 주신 덕분이죠.”
“덕분은 무슨 덕분이야? 고수길 놈 아이디어 덕분이지. 그건 그렇고, 웬일이야?”
“다른 게 아니구, 선생님 말입니다.”
“선생님이라니?”
“이번에 당 총재로 다시 복귀하신….”
“아, 그래, 총재님은 왜?”
“후원금을 조금 전달할까 해서요.”
“후원금, 좋지. 그래, 얼마나?”
“20만 달러입니다.”
“뭐? 20만 달러?”
“네, 20만 달러 현찰입니다.”
“미화로 20만 달러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정확히 20만 달럽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박준호가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 뭔가?”
“이 돈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규명에 써 달라는 조건입니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규명이라면…자네 숙부께서….”
“맞습니다. 제 작은아버님의 필생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알았어. 안 그래도 총재님을 뵈러 갈 일이 있었는데, 잘됐구만. 그래, 돈은 어떻게 전달할 텐가?”
“고수길 편에 사장님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아니, 왜 준호 자네가 직접 총재님께 드리지 않구?”
“아닙니다. 제 뜻만 정확히 전달되면 그만입니다. 사장님께서 수고 좀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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