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전 비극 진실 풀리나

[56년전 비극 진실풀리나·7]마을특공대, 어머니·언니 불러내 총살

⑦ 강화교동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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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전후해 인천지역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의 흔적을 찾아나가는 경인일보 기획시리즈가 시작된 뒤 종종 관련 전화가 걸려온다. 그중엔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러는 자신의 사연을 알려주려는 유족들의 전화도 있었다.
 

전쟁 뒤의 혼란과 약 30년간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꾹꾹 묻어놓고 살았던 한많은 세월들이 서서히 목소리를 내고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서 만난 임인호(69)씨와 조은순(70·여)씨 부부도 그들중 한 명이다. 이 부부는 6·25전쟁 당시 북한과 가까워 특히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던 강화군 교동(경인일보 3월 17일 1면 보도), 그 학살의 중심에 있었다.

임씨 집안에선 음력으로 1950년 11월 18일 밤 6촌 할아버지를 비롯해 모두 7명이 희생당했다. 조씨 역시 하루 앞선 1950년 11월 17일 어머니와 언니를 잃었다. 당시 14살 소녀였던 조씨는 하루 아침에 어린 두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소녀가장이 됐다.



조씨는 “그날밤 함께 자고 있는데 마을 특공대가 어머니와 언니를 불러냈다”며 “아버지가 빨갱이였고, 월북했다는 걸 나중에 어른들에게 들었지만 어머니와 언니는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어머니와 언니는 다음날 교동도 북쪽 끝 바머리(현 지석리) 해안에서 10여명의 마을사람들과 함께 숨진채 발견됐다.

조씨는 “시신들은 흙으로 대충 덮여있었고, 주위에 언니 고무신과 탄피들이 흩어져 있었다”며 “이 가슴속에 원한이 맺혔는지 그 모습을 아무리 잊으려고 애써도 잘 안된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임씨는 호적등본을 꺼내 조씨 가족들의 이름을 확인시켜줬다. 그는 “이 사람이 이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 건 처음”이라며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지만 그 아픔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4후퇴를 전후해 교동에서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다는 증언은 여러 유족들을 통해 전해진다. 교동지역 희생자들의 제삿날이 대부분 같은날 겹치는 것이다. 이날 이 부부의 증언으로 후퇴전인 음력 1950년 11월 17일(양력 12월 25일)부터 학살이 시작됐다는게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조씨가 빨갱이로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 조준홍은 누구일까. 인천지역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최태육 목사를 통해 그가 일제시대 좌익계열 독립투사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최 목사는 “조준홍은 신간회 경서지회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의해 최소 2번 이상 투옥됐었다”며 “월북한 건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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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훈기자

chki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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