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도 박물관장의 '명사와 골동품 이야기'·5]

경인일보

발행일 2006-11-27 제8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5] 전형필과 천학매병(千鶴梅甁) >2<

1940년경의 일이다. 음력 설 남루한 차림의 사내가 일본인 골동상 무라노(村野)에게 골동품 4점을 모두 4원에 넘겼다. 무라노는 이를 다시 골동상 마에다(前田)에게 60원에 팔았고, 마에다는 그중에서 특이한 백자병 한점을 거금 800원에 당시 조선은행 총재였던 마쓰오카(松岡)에게 전매했다. 얼마후 마쓰오카는 문제의 그 병을 경매에 올렸다. 이 병은 그해 11월 22일 경매에 올려져 일본 굴지의 골동상회 대표 야마나카(山中)와 경합이 붙었는데, 최초가 500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치열한 호가경쟁끝에 간송 전형필에게 1만4천58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최종 낙찰되었다. 당시 군수의 한달 월급이 70원 정도였고, 1천원을 주면 웬만한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기와집 14채 값이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삽시간에 간송을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이 병을 산 간송은 곧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느 일본인은 간송에게 거꾸로 그 병을 10만원에 되팔라고 했으나 간송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한번도 사들인 물건을 되팔아본 일이 없었다. 오히려 허를 찌른 답변이 걸작이다. “제가 이 매병을 돌려드릴 수는 있겠지만, 그에 걸맞는 물건을 가져오면 바꾸어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한편으론 크게 낙담하면서도 간송의 인물그릇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한다. 이 병이 보물 제241호로 지정된 그 유명한 백자진사철채난국문병(높이 42.1㎝)이다.

1935년 어느 무렵의 일이다. 간송은 어느날 시중에 ‘천학매병(千鶴梅甁)’이 나돈다는 소문을 들었다. 말하자면, 매병 모양의 청자에 학이 천마리나 장식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소문에 불과할 뿐 사실과는 크게 달랐지만, 그래도 청자 표면에 구름속을 노니는 학이 꽉 들어찬 보기 드문 명품이었다. 이것이 바로 훗날 국보 제68호로 지정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으로, 보통 크기의 매병이라면 그저 높이가 30㎝ 안팎인데 반해, 이 매병은 높이가 무려 42㎝에 이르는 초대형 매병이었다.

매병은 특정의 청자 기형에 특별히 붙혀진 이름중의 하나이다. 매병(梅甁)이라 하면 봄날의 매화가지를 꽂는 화병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아가리가 상대적으로 좁고 어깨가 풍만하며 몸통은 물오른 여인의 곡선을 연상케 하는 육감적인 형태를 갖는 화병형태를 일컫는 용어로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병이라기보다는 긴 몸통의 항아리라고 해야 맞는 특이한 형태를 보인다. 어떤 매병에는 어깨부위에 비단보자기를 문양으로 집어넣거나, 납작한 컵모양의 뚜껑이 동반되는 것으로 보아, 꽃을 꽂는 화병이라기보다 술이나 액체를 보관하는 항아리로 추정된다.

이 매병은 고려청자에 특히 유행한 형태로 초기 비색청자로부터 상감청자, 회청자, 고려백자에 이르기까지 고려인이 특히 즐겨 애용했던 기형이었다. 보통 한자 정도 크기의 매병이 일반적이지만, 특수계층의 요구에 따라 대형 매병도 제작되었는데, 부안 유천리 청자가마에서 출토된 파편중에는 사람 허리까지 오는 장독크기의 매병도 보인다.

먹이를 낚아챈 매처럼,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前田)가 조심스럽게 특이한 매병을 바라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 많은 매병중에서도 조그만 주둥이 바로 아래로 풍만하게 부풀었다가 좁아들면서 흘러내리는 어깨선과 허리선이 유난히 아름다운 바로 그 매병이었다. 이름하여 속칭 ‘천학매병’, 학술용어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다.


경인일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