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온 ③
“야, 새꺄.”
박준호가 조용히, 그러나 이빨로 까는 소리를 낸다.
“네, 행님.”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알겠씸더.”
어쩌는 수 없다. 평소 성격이 그러하다. 일단 지시를 내렸다 하면 세상 없는 일이 있어도 번복한 경우가 없다.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괜히 찍자를 붙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조봉삼이 일어나 선다. 주욱 둘러선 대원들을 향해 중간 보스로서의 적절한 어투로 입을 연다.
“느그덜 큰 행님 야그 들었나?”
“들었습니다.”
“그라모, 빨리 움직이라. 외부인을 공장에 한 발짝이라도 드릿다카모 모가지 빼삐끼다. 알겄나!”
“네엣, 형님!”
아이들이 복창하고 우르르 몰려 나간다. 조봉삼이 몰려 나가는 대원중의 한 녀석을 찍는다.
“야, 짝코!”
“네, 형님.”
“경표 왔나?”
“왔습니다. 전기 기술자 하고, 발동기 수리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직 못 고친기가?”
“베아링이 나갔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와 해필 요럴 때 고장이 난단 말이고! 야 짝코!”
“네, 형님.”
“경표한테 가 봐라. 그리고 수리 끝나는 대로 쌔기 오라 캐라.”
“알겠습니다.”
“빌어묵을 노무 자석덜!”
조봉삼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혼자 투덜댄다. 기실 공장은 공장이 아니다. 생산가동을 멈춘 지가 벌써 6개월째다. 이미 전기도, 전화도 끊겼고, 수도마저 나오지 않는다. 너무 오래 요금을 내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검찰과 법원이 의도적으로 선을 자르고 파이프를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한데도 공장에는 전기가 꼭 필요하다. 우선 시급한 것이 공장 사위에 쳐 놓은 철조망에 대한 전기 보급이다. 그뿐 아니다. 허구한날 촛불로 견딜 수 없으므로 전등을 켜야 하고, 14명의 행동대원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냉장고도 가동시켜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알아야 하므로 TV 뉴스 시청 역시 필수다.
그래서 긴급 입수한 발동기를 기름으로 돌리는데, 그것이 꺼떡 하면 고장을 일으키곤 한다. 14명의 행동대원 중에 전기나 기계에 손재주가 있는 놈이 경표다. 발동기가 섰다 하면 우선 경표부터 찾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박준호가 강조하는 것이 전기 철조망이다. 박준호는 전기 철조망이 24시간 내내 효력을 발휘하여, 아무도 공장 주변을 근접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기회가 있는 대로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쉐에 쉐에’
소리만 들어도 금세 사달을 낼 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전기 철조망. 물론 전기 철조망은 애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실 영등포 일번지파가 신일 강철 공장을 접수하고 나서 첫 작업으로 시도한 것이 바로 전기 철조망이다.
외부의 접근을 막기 위한 조처다. 아니, 영등포 일번지파의 가공할 전투력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쫓겨난 신일 철강 노조 강경파들이 다시는 공장을 점거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완전봉쇄 작전이다.
하나 시작은 그것이 아니다. 가공할 화력을 보유한 영등포 일번지파의 그것을 감히 누가 넘보며, 함부로 시비를 붙겠느냐가 박준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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