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도 박물관장의 '명사와 골동품 이야기'·6]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04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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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형필과 천학매병(千鶴梅甁) >3<

천학매병은 우리나라 매병중 대표작이다. 도자기를 볼때, 보통 어디에다 높은 점수를 줄까를 생각하게 된다. 형태, 색, 문양 등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기준은 없다. 그러나 청자의 경우 기형이 좋아야 물건이 된다. 이 천학매병은 우리나라 청자중에서 가장 늘씬한 몸매를 갖고 있다. 팔등신 미인이라고나 할까? 아직까지 이 매병의 미끄러지듯 내리뽑는 몸통 곡선을 뛰어넘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현재 높이가 42㎝정도니 가마에 넣어져 굽기 전의 크기는 50㎝가 넘는 대형의 매병인데, 그런 크기에 옆으로 흘러내리는 몸통선이 그렇게 육감적일 수가 없다.

몸통 위로는 아래쪽에 형식화된 연판 문양을 새겼고, 그 위 넓은 공간안에 흑백 이중원을 치고 그 안에 구름속을 노니는 마흔여섯마리의 학을 새겨 넣었다. 원 사이사이 트인 공간도 역시 구름과 학을 자유롭게 배치해 전체적으로는 구름을 뚫고 날아 오르내리는 학의 자태를 그렸다. 멀리서 보면 너울너울 학춤을 보는듯하다.

세상에는 어떤 운명과도 같은 인연이 있나보다. 물유각주(物有各主)라 임자는 따로 있는 법. 이 매병은 원래 개성 근처의 어느 산에 묻혀있다가 도굴꾼의 손에 발굴되었는데, 빛을 보기 무섭게 어느 거간의 손에 넘겨졌다. 그 거간은 단골손님이던 일본인 수집가에게 이 명품을 넘기려고 했으나, 마침 일본으로 떠나고 없었다. 허탕을 치게 된 그는 대구에서 치과의사를 하던 신창재라는 이에게 매병을 4천원에 넘겼다. 당시로는 놀랄만한 값이었지만 미녀는 팔자가 센 법, 명품은 임자를 찾아 돌게 마련이어서 그런지 몇다리 건너 이 물건이 드디어 골동품상 마에다에게 온 것이다. 물건의 진가를 안 마에다는 내심 임자를 잘만 만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조선총독부에서 1만원에 사겠다고 제의해 왔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간송은 믿는 거간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심보다. 60대에 접어든 심보는 30대의 젊은이(간송)의 열정을 읽고 이미 소문이 크게 나 있었던 이 명품의 운명적 주인이 간송이라고 굳게 믿고 중개를 자처하고 나섰다. 세상에 빛을 보자마자 4천원이라는 거금에 값이 매겨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명품 청자가 얼마에 최종가가 매겨질지는 정말 긴장감 넘치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같은 일이다. 그것도 당시 총독부에서 1만원이라는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기는 하면서도 속으로 군침만 삼키고 있을때 간송은 작심하고 일단 그 물건을 보기로 했다.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는 떠보듯이 2만원을 불렀다. 나이도 어려 보이고 게다가 식민지 백성인 간송이 설마 이 물건을 사기야 하겠냐는 배짱반 무시반의 심정으로 부른 값이었다. 일본에서 그 물건을 놓지지 말라는 별개의 주문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명품은 주인을 알아본다. 미녀는 아무나 차지하지 못한다. 간송은 묵묵히 한참이나 있다가 나지막하게 말을 잇는다. “그렇게 하지요.” 청자 최고의 명품이 우리나라에 남아있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마에다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끼는 한편 간송이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하마터면 일본인에게 넘어갈 뻔한 이 `청자 천학매병'은 간송미술관의 특급 유물로 관리돼 지금도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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