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경기민예총 권을 생각한다·2]'보이지 않는 인권의 적'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05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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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설가 이재웅

   나는 고등학교에 나가 소설을 가르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는 소설을 잘 쓰는 친구가 몇 명 있다. 나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어서, 그것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제법일세 하고 있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데 있어, 이 친구들의 작은 문제점 중 하나는 자신감 부족이다. 내가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소설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탓도 있고, 또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갖게되는 자의식도 포함되어 있지만, 또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일테면, 학교 성적이 그것이다. 이 친구들은 학교 성적이 썩 좋지않고, 그래서 학교 성적이 좋지않은 자신이 소설을 잘 쓰는 것이 가능한가하고 묻곤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친구들에게 학교 성적과 소설의 창작 역량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단 인문학에 대한 성실함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이 친구들이 썩 깊이 받아들이는 눈치는 아니다. 이 친구들은 여전히 학교 성적이 나쁜 것은 곧 자신들이 지적 열등생이라는 증거며, 더 나아가 학교 성적이 부진한 그들은 내가 말하는 인문학에 대한 성실도 역시 낮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말하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다.

이쯤되면 나 역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만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학교 성적이 나쁜 그들에게 그것은 위로 이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역시 어떤 면에서는 그들과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고백하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성적이 썩 좋은 녀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문에 지금 제자들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다. 더 고백하면, 나를 가르쳤고, 또 내가 글쟁이가 목표인 것을 알았던 한 선생은 “너처럼 국어 성적 나쁜 녀석이 무슨 글쟁이냐?”하고 수모도 주었더랬다. 그때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나 또한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요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던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자괴감과 수치심을 십년이 넘은 지금의 내 제자들도 똑같이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 환경이 변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등수를 매기는 성적표도 사라졌고, 확실히 성적에 따른 매타작도 전보다는 덜해졌고, 또 성적에 따라 인격이나 꿈까지 재단하는 무지막지한 선생도 얼마만큼은(?) 사라졌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나를 힘겹게 했고, 또 내 제자들을 힘겹게하는 억압까지 사라졌는가하고 물으면, 그것은 잘 모르겠다.

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 한국이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고 한다. 한국인 사망원인 중 암과 뇌출혈 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자살이 그 뒤를 잇는다는 것이다. 한 해에 자살로 죽는 숫자가 1만명이 넘는다. 더 나아가, 30대는 자살로 죽는 사람 수가 암이나 기타 질환으로 죽는 사람 수보다 많다. 이제 전쟁도 없고, 민주화도 많이 이뤘고, 경제적 부도 세계 10위권 안팎에서 맴도는 나라가 그렇다.

암울했던 시절 왕왕 들려오던 인권유린이라는 말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인권을 애초에 포기해버리는 숫자는 훨씬 많아졌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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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한 교육자는 우리는 모두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다. 문제는 그것을 기억해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한다. 혹, 우리는 성적표와 매가 사라졌다고해서 우리가 정말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언제나 그렇지만, 눈 앞의 작은 적과 싸우는 것은 쉽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 싸우는 것은 힘들다. 인권을 지키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약력=1974년 전북 정읍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실천문학으로 데뷔, 장편소설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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