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온 ⑨
어느 누가 그런 그녀를 여고 1년생이라고 하겠는가.
“강이 보이는 호텔이 좋겠어요.”
그녀의 첫 마디다. ‘어쭈, 호텔씩이나?’
조봉삼이 입을 연다.
“강이 보이는 데라? …그래, 생각났다. 커튼 열면 강물이 한 눈에 팍, 오는기라… 근데 빌어묵을 장급 아니가? 그래도 괜찮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모, 요즘은 장급이 오래된 호텔보다 백 번 낫다 안 카나.”
게다가 나이를 위장하기 위한 잡다한 치장, 이른바 선글라스, 모자 등을 벗어 버리자, 마치 이제 막 차기 시작한 양배추의 속살처럼 비릿한 그녀가 톡 불거진다.
역시 여고 1년생이다. 뻔뻔하게, 작은 궁둥이를 요리조리 뒤틀며 엘리베이터에서 방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활활 옷을 벗어 던질 기세였지만 막상 조봉삼이 자물쇠를 철컹 채우고, 그녀 곁에 가까이 다가서자, 친친 감은 쇠사슬인 양 팔짱을 꼭 낀 채 꼼짝않고 서 있기만 한다.
그녀는 이제 금방, 무자비하게 짓이겨 놓은, 말 그대로 치열한 전투 흔적이 너무나 적나라한 잔주름을 억지로 펴 놓은 침대 시트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그래, 네 눈이라고 뭐가 안 보이것나?’
조봉삼이 회심의 미소를 날린다. 그리고 그녀처럼 아직도 땀자국이 마르지 않은 시트를 본다. “다리 안 아푸나? 앉그라.”
조봉삼이 장식용인 듯 형식적으로 놓여 있는 두 개의 의자를 가리킨다. 그래도 그녀는 반응이 없다.
“앉으라캐도.”
“아저씨.”
“오, 그래. 머 도와주까?”
“담배 한 대 주세요.”
“담배도 피우나?”
“줄 거예요. 안 줄 거예요?”
“하모 주고말고. 자아-.”
조봉삼이 먼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다음 한 모금 길게 내뱉고 나서, 아니 필터에 자신의 타액을 듬뿍 묻인 다음, 그것도 그녀의 손에 들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가녀린, 그러나 촉촉이 젖어 있는 입술에 억지로 후벼박듯 거칠게 물려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다기보다 그냥 가득 머금었다가 시나브로 풀풀 빠져나가게 한다. 그러다 보니 기침이 콩콩 뒤따른다. 불량소녀처럼 멋지게 폼을 잡아 보지만 아직은 생짜가 분명하다.
조봉삼이 제법 준엄하게 말한다.
“그만, 이제 공부나 허자 그마.”
“공부라뇨?”
엘리시온이 의외라는 듯 조봉삼을 본다.
“사람 공부… 인간 몸 구조가 우찌 형성되어 있는가… 생식 기능은 또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녀가 피식 웃는다. 조봉삼은 웃지 않는다.
“다른 공부는 못해도 통과 통과 그냥 지나 안 가나? 허지만 이 공부 제대로 몬허모 인생 낙오자에다 패배자에다 평생 불행허게 산다 아니가? 내 말 무신 뜻인지 알 것나? …와 대답이 없노? 대답허기 싫으모 고개라도 끄덕끄덕 해 삐라 그마… 니, 나 같은 인생 선배 잘 만난기라. 이 조봉삼 교수가 니랑 수업 헐 과목은 생명과학과 철학을 생각허는 파라다이스 아니가?”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아저씬 생긴 거 보다 더 재미있네요.”
“그렇제? 니는 참말로 아이큐가 조타.”
“아이큐가 좋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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