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도 박물관장의 '명사와 골동품 이야기'·7]손재향과 세한도 >1<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11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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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素筌) 손재향(孫在馨, 1903~1981)은 추사 김정희이래 아주 빼어난 글씨를 남겼던 서예인이다. 만일 그가 글씨에만 전념했더라면 추사 못지않은 업적을 남겼으리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말년에 정치에 발을 담그고 나서부터 글씨도 명예도 다 놓쳐버린 아까운 인물이다.

전라남도 진도 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때 이미 선전에서 특선을 할 정도로 그림과 글씨에서 걸출한 기량을 발휘했다. 그는 타고난 재주에다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서화골동계에 뛰어들어 당대 최고의 수장가이자 감식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세검정근처에 멋진 한옥을 지어 사랑방과 대청에 서화를 걸어놓고 감상하기를 즐겨하는 멋쟁이 풍류객이었다. 그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특히 좋아해서 글씨는 물론이고 추사의 전각작품과 함께 인장등 추사가 사용했던 유품들을 즐겨 모아들였다.
그는 우리 서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는데, 어느날 간송 전형필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다. "간송이 골동은 나보다 낫지만 서화는 나만 못할 것이다." 골동은 도자기나 불상등을 말하고 서화는 옛그림과 글씨류를 일컫는 말인데, 수집열이나 수집하는 방법도 간송은 조용하고 끈기있게 처리하는 데에 비해 소전은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건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를 일본에서 찾아온 일이다.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 유배시절에 그린 자조적인 문인화로 개인의 이익만을 좇는 세태속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에게 지조를 지켜준 제자 이상적(1804~1865)의 인품을 칭송한 그림이다. 그렇다면 화가도 아닌 서예가인 추사가 그린 세한도가 왜 그토록 유명한 그림이 되었을까. 세한도(歲寒圖)는 매서운 추위와 을씨년스런 쓸쓸함을 나타낸 그림이다. 대개 그림은 잘 그려 유명해지는 그림도 있긴 하지만, 때로는 어린애처럼 천진하게 그리거나 초보자가 그리듯이 못그린 그림이 더 빛을 발하는 때가 있다. 세한도는 그런 그림으로, 극도로 절제된 화면을 통해서 지조를 세워 고고하게 지내는 꼿꼿한 선비정신을 추위를 견디는 노송과 잣나무에 비유하여 거칠게 그려낸 것이다.

추사의 역작 세한도는 그림의 내용만큼 산전수전 다 겪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0대초반에 문과에 급제한 김정희는 예조참의를 거쳐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면서 순탄한 벼슬길을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부친 김노경(1766~1840)의 일로 안동김문의 탄핵을 받아 고금도로 귀양을 갔다. 당파싸움의 와중에서 그는 1840년 다시 제주도로 8년간의 길디 긴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만 정진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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