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생각한다·3]시인 우대식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11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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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팔 찌

면사무소 앞 제과점
아이들과 팥빙수를 먹는데
열대 외국인 노동자 한 사람이 유리창 밖에
털썩 주저 앉는다
새로 산 믹서기 한 대를 앞에 놓고 롯데 마트
계산서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땀이 흐르는 손목에 낀 금빛 싸구려 팔찌가 촌스럽게 빛났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뚜껑을 여는 순간
한 여인과 두 아이의 사진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그는 아버지였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지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오렌지를 갈아 아이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얼음을 갈아 아이들과 맛있는 팥빙수를 먹었을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열대의 야자수 나무에 코드를 꽂고
그는 수도 없이 믹서기를 돌렸을 것이다
그의 팔찌가 순연의 금빛을 띠었다


   
 
   
 
▲작가노트=내 어린 날 아버지는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먼 나라로 돈을 벌러 떠나셨다. 모래 바람이 부는 사막에서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찍은 사진을 보내오던 얼굴이 검던 낙타 한 마리, 그 분이 내 아버지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이국의 노새 한 마리, 그도 아버지였다. 그 앞에 어떤 연민도 우습다. 아버지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보내온 이국적인 믹서기 한 대를 30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싱싱싱 믹서기를 돌려라.

▲약력=1965년 강원도 원주 생. 1999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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