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생각한다·4 소설가 윤성희]물어야 할 것과 묻지 말아야 할 것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12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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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성희

전학을 온 아이가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는 나는 전학을 온 아이만 보면 가슴이 설레곤 했다. 어디서 왔을까? 그곳의 바람은 어떨까? 거기도 이곳처럼 지루하고 심심할까? 그렇게 궁금한 것들이 넘치게 되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가가, 넌 어디서 왔니? 하고 묻곤 했다.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먼 곳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나라 남쪽에 있는 섬에서. 그러면 그냥 그 섬에 대해서만 물었어야 했는데, 내 질문은 지나치게 많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부모님이 무얼 하는지 물었다. 부모님은 안 계신다고 했다. 2주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어떤 시설에 대해 물었다. 그곳은 어떤 곳이니? 그 아이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 묻고 물었다. 거기 아이들은 어떤 사람인지, 밥은 어떻게 먹는지, 도시락은 누가 싸주는지, 설거지는 누가 하는지 등등….

나는 그게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때 오로지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란, 훗날 나도 그런 곳에 가서 살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미리 잘 알아두어야지,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 걸 알게 된 것이 영어단어 하나를 더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니들 모르지. 거기도 보온밥통이 있어. 거기도 이층침대가 있어. 거기도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그 아이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이렇게 부탁했다. "이제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어."

그때 바로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냥 그 아이와 나는 멀어졌다. 사과를 하지 못한 나는 가끔 꿈에서도 그 아이를 만난다. 이제 그만 물어봐. 이제 그만 물어봐. 이런 말을 수십 번 들은 후에야 잠에서 깬다. 어떤 이들은 그 꿈을 악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꿈을 좋아한다. 아, 그렇구나. 꿈속에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보면, 세상엔 묻지 말아야 할 것들도 많다. 질문을 자주 하는 아이가 큰 인물이 된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럴 때 질문이라는 건, 하늘은 왜 파란가요? 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채 어른이 되면 이런 질문들만 궁금해지게 된다. 저 사람은 왜 취직을 못할까? 저들 부부는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왜 저 아이의 얼굴에는 저런 상처가 나 있을까? 저 사람은 언제부터 걷지 못하게 되었을까?

세상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곧 이 세상에는 그 사람들 각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가 셀 수도 없이 많이 상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제 제발 이웃집 현관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고, 아버지가 둘이면 어떻고, 아버지가 어느 날 어머니로 바뀌면 어떤가. 무기로 공격하지 않는 공격들은 더 상처가 깊다. 왜냐하면 다친 곳을 쉽게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를 하기가 쉽지 않다.

물어야 할 것들과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의 경계를 잘 아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걸 왜 알아야 하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걸 알게 되
   
 
   
 
면 내 삶이 훨씬 행복해진다고.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은 결국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출 테니까. 그러면 편견에 사로잡힌 나를 늘 일깨워줄 테니까.


▲작가약력= 1973년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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