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도 박물관장의 '명사와 골동품 이야기'·8]손재형과 세한도 >2<

간결하고 고고한 멋 선비정신의 진수 추사 흠모 日 사학자가 해방전 반출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18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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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손재형과 세한도 >2<


세한도의 주인공 이상적은 중국을 들락거리면서 어렵사리 구한 책을 추사에게 보내 드렸다. 당시는 당파싸움의 와중이라 누구도 귀양가 있는 추사를 도우려 하지 않았는데, 의리와 지조가 있는 문하생 이상적은 두 번이나 위험한 일을 자초하였고 이를 고맙게 여긴 추사가 그에게 세한도를 그려주기에 이르렀다.

그림을 받은 이상적은 북경에 갈 때 이 그림을 가지고 가서 그곳의 학자들에게 구경을 시켜주고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16명의 명사들로부터 그림을 감상하고 찬시를 짓게 하여 그림의 말미에 붙였다. 그후 김정희의 문하생이던 김석준의 찬문과 오세창 이시영의 그림 감상문을 뒤에 붙여서 현재의 두루마리로 완성하였다.

그로부터 대략 백년쯤 지난 1945년 이전 어느해 북경의 한 골동상에서 경성제대(구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일본인 후지츠카 지카시(藤塚·1879~1948)는 이 희대의 명품 세한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추사의 대표적 걸작인 이 세한도를 만나고 나서 인생의 방향을 바꿔 추사를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문학박사 학위청구논문으로 추사와 청 문인들의 관계를 다룬 논문을 작성한다. 일본인 후지츠카의 추사 김정희에 대한 흠모의 감정과 학문적 몰입을 이야기해주는 유명한 일화다.

경성대학 재직시절부터 소전 손재형은 후지츠카에게 이 세한도를 양도해 달라고 목을 매었다. 당시 후지츠카는 상당한 양의 고미술품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었고 추사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44년 시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세한도를 갖고 일본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국내에 있어도 되돌려 찾기 어려운 판에 일본으로 반출되어 버렸으니, 세한도의 운명이 남의 손에 좌지우지될 판이 되고 만 셈이다.

그러면 세한도는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소전이 기를 쓰고 되찾아 오려 했을까. 이 그림은 가로 108㎝ 세로 23㎝의 우로부터 그려 좌로 말아가는 족자형식의 소박한 풍경화의 일종이다. 풍경은 풍경이되 간결한 선으로 구성한 집 한 채와 그 좌우를 메우고 있는 늙디 늙은 고송과 잣나무를 대치되게 구성한 화면이 그림의 대부분으로 전체는 한없이 트인 공간으로 처리하여 여백효과를 살리고 있다. 서양화는 눈으로 보고 동양화는 머리로 읽는다. 서양화, 즉 유화는 주로 구성이나 색을 눈으로 음미하는데 반해서, 동양화는 마음속의 뜻이나 이상적인 경치를 머리로 구성하고 그것을 읽어낸다. 세한도는 그러한 동양화의 예술적 특성을 극대화시킨 작품인데, 간결한 구성과 메마른 필치에서 오는 고고한 분위기가 추사가 추구한 선비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중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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