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도 박물관장의 '명사와 골동품 이야기'·9]손재형과 세한도 >3<

집요한 양도요구 병석의 日 소장가 두손들어 소전 정계입문후 이리저리 떠돌다 국보지정

경인일보

발행일 2006-12-25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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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형과 세한도 >3<

화면의 오른쪽에 세한도 세글자 화제를 예서로 내리 쓰고, 그 옆줄에 다시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이라 관지를 쓰고 그 아래 정희(正喜)/ 완당(阮堂)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우선은 제자 이상적의 호이니 추사가 그에게 내려준 그림이다. 세한이라는 뜻도 그렇지만 추위와 고난에도 지조를 잃지 않고 뜻을 꼿꼿이 세우는 선비정신을 기리는 의기가 엿보인다. 함께 병기한 화제에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송백만이 홀로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물건에 맞는 주인이 있나 보다. 일본인 후지츠카가 부둥켜 안고 반출해간 '명품-세한도'를 되찾아 오기 위한 소전의 노력은 필설로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지독했다.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노력처럼 여겨지는 일이었다. 소전은 후지츠카의 집 근처에 여관을 잡아 놓고 장기전에 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병석에 누워있는 후지츠카의 병문안 가기를 여러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찾아가 인사만 했다. 그러기를 1주일, 병석의 후지츠카가 찾아온 연유를 묻자 세한도를 양도해 달라고 하기에 이른다. 그 뒤로도 몇달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손재형에게 마침내 후지츠카는 두손을 들고 말았다. 끈기와 애정의 승리였다. 애국심의 발로이기도 했다.

손재형이 얼마의 돈을 주고 세한도를 양도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때 세한도를 되찾아 오지 못했다면 우리의 국보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다. 후지츠카의 집에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났기 때문에, 만약 손재형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전쟁통에 불타없어져 버렸을지 모르니까.

명품은 임자 찾아 돌고, 미인은 팔자가 드센가 보다. 갖은 고생끝에 찾아온 세한도는 다시 영원한 임자를 찾아 밤길을 헤맨다. 해방후 소전은 서화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1947년 진도중학교를 설립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그는 정치에 몸을 던지고 정치인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여신이 세한도의 진짜주인을 찾아주기 시작하는 작은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정치는 돈먹는 하마인가. 소전은 정치를 하고나서부터 돈을 빌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고리대금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다.

돈에는 눈이 없고 인정은 저만치 물러나 있는 법. 소전은 개성상인 이근태에게 세한도를 비롯한 고서화 한뭉치를 주고 급전을 빌리게 된다. 그때 함께 저당잡힌 고서화중에는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병풍, 겸재 정선의 인왕재색도 등 훗날 모두 국보로 지정되는 알짜중의 알짜그림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세한도가 손재형의 품을 떠날 때가 되었나보다. 소전은 급전을 빌린 첫달부터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까지 갚지 못하고 마는데, 전주 이근태는 상대가 유명한 인사이자 현역 국회의원이라 끙끙 속만 태웠다. 그마저 자기가 살던 집을 날리고 소전의 동의하에 보관중이던 고서화를 한점한점 되팔기 시작했다. 결국 명품-세한도는 개성갑부 손세기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그의 아들 손창근의 명의로 소유가 이어졌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던 세한도는 1974년 국보 제180호로 지정받았고, 소전이 가졌던 많은 서화류는 대부분 삼성에서 인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품유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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