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인도차이나의 석양 ⑥

'말도 안 돼. 아무렴 이럴 수가…….'

집어 넣고 또 넣어도 다시 튀어나오곤 하는 고장난 용수철처럼 대책없이 김상도 회장을 괴롭힌 그 뜨거운 욕망을 어떻게 감당했었던가.



지금이 바로 그러하다. 그녀는 샤워중이고, 김상도는 저녁 놀을 보며, 조용한 산장에 앉아 있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더구나 이제 서로가 알 만한 것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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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그녀를 지켜보고, 감시하고, 간섭하는 동안 김상도 회장도 홍주리에 대해 알 만큼 알고, 홍주리 역시 김상도의 필요 이상의 관심에 대해 색안경을 낄 만큼 적당히 교활해졌다고 봐야 옳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침실이라고는 더블 하나밖에 없는 방을 태연히 들어설 수 있으며, 더구나 시아주버님 혼자 있는 실내에서 옷을 훨훨 벗어 부치고 샤워를 할 수 있는가 말이다.

'맞아. 주리도 이미 각오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래,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그러기에 두 사람만 헬기에 올랐을 때도 가타부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거라구.'

김상도는 절대로 그것이 본인만의 희망 사항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당연한 귀결이고, 당연한 합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그는 물소리가 끊긴 샤워장 쪽을 힐끔 본다. 그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거칠어져 있다. 벌써 그녀를 품에 포옥 껴안은 느낌이다.

'맞아, 이거야말로 하늘이 점지해 준 절호의 찬스야.'

김상도 회장은 홍주리를 기다린다. 샤워를 끝낸 싱그러운 알몸을 타월로 감싼채 불쑥 나타나 주기를 손꼽아 고대하는 것이다.

하나, 홍주리는 타월 차림새도, 알몸도 아니다. 어느새 간편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다. 그래도 한 마리 까투리처럼 날아갈 것같다. 타월로 머리를 싸올렸으므로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그렇게 희고 보드라울 수가 없다.

"뭐 좀 마실래요?"

그녀가 문지방쯤 서서 묻는다. 김상도가 대답한다

"아냐, 괜찮아. ……이리 와서 좀 쉬지. 의자가 여간 편하지 않아."

예의 라운지 체어를 가리킨다. 아니, 팔을 뻗으면 그녀가 손에 잡힐 만큼 의자를 가깝게 끌어당긴다. 성숙한 플로랄 향내를 물씬 풍기며, 그곳에 주저앉는 홍주리가 문득 발견했다는 듯이 유별나게 붉고 거친 인도차이나의 석양을 바라본다.

"어때?"

김상도 회장이 묻는다.

"아름답네요."

"뭐가 아름다워?"

"황혼이요."

"내가 말한 것은…… 의자야. 의자가 좋지 않아?"

홍주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다.

"좋아요."

"나처럼 이렇게 드러누워 봐."

"전 피곤하지 않은걸요."

"얼마나 편한지 누워 보라니까."

마지못해 그녀가 상체를 눕힌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두꺼비 같은 손이 슬며시 와서 귓바퀴에서 흘러나온 홍주리의 머리칼을 걷어 올린다. 물기 젖은 머리 올이다.

움찔 놀라긴 했지만 그녀는 심하게 사래질 치지 않는다. 다만 그 손이 그녀의 석양 빛깔 도는 볼과 목덜미로 흡사 술 취한 괴한처럼 쑥쑥 내려오는 것을 잽싸게 붙잡아 그의 몫인 라운지 체어에 옮겨다 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말문을 닫고 있다.

어색한 침묵이다. 김상도가 험험 기침을 하며 입을 연다.

"……일규…… 그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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